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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작은 자가 큰 자입니다.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작은 자가 큰 자입니다.

후앙리 2012. 9. 26. 00:09

몇년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날 어느 선교 단체에서 질문서 10개를 보내왔습니다. 제가 답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들은 저희 선교부를 다른 선교 단체에 소개하도록 질문서로 만든 것입니다. 그중에 한 질문이 이렇습니다. 귀 단체의 대표적인 선교사와 대표적인 선교 사역지를 소개해 주세요, 라는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질문을 보고서 한참을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안 드십니까? 대표적인 선교사와 대표적인 선교지를 소개하라는 질문이 저에게는 이상했습니다. 대표가 누구이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희 선교부의 선교사들은 모두가 대표적인 선교사입니다. 모든 선교지가 저희 선교부의 대표적인 선교지역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선교부는 모두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선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보이는 사역으로 선교사를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표성을 띌 만큼 그렇게 중요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질문을 받고 마음이 아팠고 쓸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조차도 세상의 기준에 의해 누구는 크고 누구는 작은가 하는 판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세상은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벌거나, 공부를 잘 하거나, 높은 자리에 있거나 하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옛날의 약장수가 그랬지요. 애들은 저리가!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이들에게 저리 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어린 아이들은 사람 축에도 못 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여인들과 함께 인구조사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취급을 못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아이들에 대한 태도는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거룩하신 예수님께 아이들이 다가올 수 있습니까? 그 시대에서는 아이들이 예수님께 올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 세상에서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선교사들을 판단할 때 대표적인 선교사가 있고 어느 사역지는 대표적인 사역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관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거기다 더 심각한 말씀을 하십니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어른들이 귀찮아 했던 그 어린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점과 예수님의 생각은 세상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 세상에서 비록 작은 일인 것처럼 보여도 그 일이 바로 주님께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성경은 항상 이 세상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성경의 가치관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했습니다. 큰 자가 되려면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으라고 합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섬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한 것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비록 세상의 기준에서는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일일지라도 주님마저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일을 아십니다. 예수님이 소경을 고치시고 난 다음에 소경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심판하려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주님 나라에서는 소경이 보게 됩니다. 보던 자들이 소경됩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잘나고 큰 사람들은 주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크고 대단한 사람들을 칭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작지만 정성스러운 헌신을 즐겨하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주님께 왔던 부자는 자기 자신의 재산 때문에 걱정하며 주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과부의 두 렙돈을 귀하게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도 과부처럼 두 렙돈 밖에 드릴 수 없는 입장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주목받지 못하는 그런 보잘것 없는 사람이 될지 몰라도 우리의 조그만 헌신이 놀라운 주님의 기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마리아의 향유를 귀하게 칭찬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아마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멸시 받았던 죄인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마리아를 귀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우리의 조그만 헌신을 주님은 귀히 보시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2012.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