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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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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주일예배 준비 본문
지금 출석하는 교회에서 나는 한 달에 한 번 설교를 한다. 매 주일 청년 주일학교 성경 공부를 인도한다. 한 달에 한두 번은 교회 연합회에 속한 다른 교회를 방문하여 설교를 한다.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의 주일학교 시간은 오전 9시 30분이다. 장년, 청년부, 유치부, 유년부 주일학교, 이렇게 네 부서로 나누어 진행한다. 주일학교가 끝나면 10시 30분부터 2시간 정도의 주일예배를 드린다. 시간이 이렇게 정해져 있는데도 각 부서 주일학교는 제 시간에 시작하지 않는다. 9시 30분이 시작 시간임에도 10시에야 한두 명 오기 시작하여 10시 10분이 지나서야 시작된다. 주일학교 시간이 늦어지면 자연히 주일예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늘 우리 가족은 9시 50분경에 교회에 도착하였다. 우리 가정도 전에는 일찍 와서 기다리다가 이제는 아예 늦게 온다. 9시 30분이 주일학교 시작 시간이라고 아무리 광고를 해도 10시까지 한 사람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10시로 옮기면 시작 시간은 30분이 늦어져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기에 예배 시간을 늦출 수는 없다.
지난 6년 동안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면서 예배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주일예배나 교회를 보지 못했다. 오늘도 예상했던 대로 청년들은 하나도 와 있지 않았다. 청년부가 공부하는 교실의 문도 열려 있지 않았다. 다행이도 장년 주일학교는 본당에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인도자는 목사님이 아니라 교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의 장년 주일학교 인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목사님과 장년 주일학교 공부 인도자는 아직 교회에 오지 않은 것 같다. 어린이 주일학교도 마찬가지로 교사들이 오지 않았고 어린이들만 몇 명 와 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불러 청년부 교실의 열쇠를 찾았다.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지금 교회에 누가 왔는지를 둘러보았다. 목사님의 가족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목사님 집은 교회에서 100미터 거리에 있다. 목사님의 따님이 어린이 주일학교 담당 교사인데 10시 10분이 넘어서까지 교회에 오지 않은 것이다. 주일학교 교실들은 문이 닫혀 있었고, 장년 성경 공부는 다른 사람이 인도하고 있었는데 목사님의 가족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평소에 일찍 왔던 청년들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기 전에 먼저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열쇠를 찾는 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의 긴장감은 더해졌다. 그때로부터 30분 정도 지나서야 청년들이 한두 명씩 교회로 오고 있었다. 교회에 오면서 청년들이 오늘은 청년부 주일학교로 따로 모이지 말고 청년들도 장년 주일학교에 참석하라는 목사님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화가 났다. 주일학교와 예배를 드릴 분위기라고는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주일 순서와 시간이 다 뒤바뀌어 엉망이 되어 있는 상황이 화나게 했다.
그 순간 당장 목사님 집에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보다는 먼저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 교회 예배를 이렇게 준비해서 안 된다고 좀 쏟아 붓고 싶었다. 시간도 안 지키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좀 바르게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장 일어나서 목사님 댁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충동을 느꼈지만 마음을 억누르고 참았다. 대신에 화난 마음을 가지고 교회 한쪽 구석진 곳에 앉아 혼자 조용히 기도하였다. 화를 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화를 억누를 수 있었고 마음의 안정도 조금 찾을 수 있었다.
기도하고 눈을 뜨니 주일학교 교사들과 목사님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오늘따라 목사님은 정장을 하고 있었다. “정장을 하시느라고 이렇게 늦게 도착하셨나?”하는 비꼬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목사님께 점잖게 인사를 하고 어떻게 된 거냐고 조용히 물었다. 목사님이 대답하시기를, 오늘 한 어린아이의 헌화식(이곳 대부분의 개신 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하는 가톨릭과 구별하고자 유아세례 대신에 헌화식을 한다.)이 있어서 그것을 준비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특별한 행사가 있어서 청년들도 따로 모이지 말고 장년 주일학교에 함께 참석하라고 했다고 하신다. 헌화식에 대해서 청년들도 알아야 될 것 같아 장년 주일학교에 참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장년 주일학교 성경 공부 담당자는 오늘 개인 일이 있어 나올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을 세웠노라고 했다. 그리고 헌화식을 하는 것에 대해 내게 미리 말하지 못한 것과 청년들을 장년 주일학교에 참석시킨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이 모든 일이 생기게 된 것은 갑자기 헌화식을 하게 된 것 때문이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셨다. 이 나라에서는 자신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표현은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평소에는 일주일 전에 헌화식 광고를 하는데 오늘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헌화식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를 하신 것이다. 사실 미리 계획하고 광고하면 좋지만 이 나라 문화는 갑작스럽게 일이나 행사를 진행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도 목사님은 내게 미리 알려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를 하신 것이다.
목사님의 사과 후에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방금 전에 목사님 댁에 가서 한바탕 소동을 치고 싶은 생각을 품은 것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의 혼란한 상황이 선교사인 나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정말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을 생각해서 목사님께서 내게 사과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화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드러내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목사님은 나를 이렇게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데 나는 이들의 문화와 습관에 대해서 아직도 참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를 못하고 화를 냈으니 참 한심한 선교사인 것 같다. 선교사로서 현지인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은 연약한 선교사이다. 나는 아직도 이분들에게서 배려하는 태도를 더 배워야 할 것 같다. 이런 나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현지인의 문화를 배우고 현지인들을 더 이해하는 선교사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예배 시간이나 모임 시간이 지체되는 것에 대해서도 이들의 문화이기에 존중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체되는 문화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별 문제가 안 되고 선교사인 나만 힘들고 스트레스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이들 문화에 적응해야 하고 나도 이들과 함께 시간 지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 진정한 선교사가 될 수 있다. 현지인의 문화를 내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현지인의 문화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선교사로서의 자세를 다시 새겨본다. (2001.1.14 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