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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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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청년 제자 훈련 본문
오늘로 세 번째 청년 제자 훈련 모임을 가졌다. 청년 제자 훈련 모임에 지금까지 총 10명이 참석하고 있다. 10명의 숫자는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숫자이다. 청년들은 내가 일하는 교회 연합회에 속한 세 개의 교회에서 왔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 모임이 은혜가 넘치고 이들이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로 훈련되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다짐해 본다.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겉으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선택하셔서 3년 동안 훈련시키셨다. 그러나 열두 명 중 한 명은 예수님을 배반하였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있을 때 도망갔거나 멀리서 보고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최소한 겉으로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제자 훈련의 참된 결과는 예수님의 죽음 후에 나타났다.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갔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 전도자로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복음의 씨앗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들이 복음의 씨앗이 되어 복음의 확장이 시작되었다. 제자 훈련 사역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훈련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되었다.
많은 숫자와 눈에 보이는 열매를 중요시 여기는 세상에서 선교사에게 제자 훈련 사역은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이 방법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며 지금 인도하고 있는 청년 제자 훈련 그룹을 예수님의 제자로 훈련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힘으로 그분의 제자로 세울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큰 소망을 두고 훈련하고 있다. 이 제자 훈련 모임 자체가 나에게는 그 어떤 사역보다 중요한 사역이다. 이들을 선택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 기도의 결과로 이들이 모집되었다. 기도를 통해서 이들을 선택했기에 이들에게 큰 비전을 두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훈련을 받겠다고 자발적으로 온 청년들이다. 이 제자 훈련 모임에서 공식 학교 기관처럼 학위를 주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로서 물질적인 것으로 이들을 유혹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처럼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이 모이기에 별 좋은 조건이 없다. 오히려 안 좋은 조건이 더 많다. 이 훈련 모임에 한 번 오면 결석할 수 없다. 많은 숙제를 해야 한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참석해야 한다. 까다로운 조건들만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제자 훈련에 참여하겠다고 스스로 자원해서 왔다. 나는 그저 광고만 했을 뿐이다. 이들이 자원을 한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마음 때문이라고 믿는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다. 주님이 제자들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었다면 헌신적인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지금 제자 훈련 모임에 온 10명은 자발적으로 와서 참여하기에 헌신된 자,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믿는다. 그러기에 내게는 이들이 주님의 나라를 위한 소망이다.
나는 이 모임을 주님처럼 진행하려고 한다. 주님의 전략은 함께 사는 것이었다. 나도 나의 삶을 이들과 투명하게 나누며 함께 하기를 원한다. 주님은 가르침의 방법으로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교육을 행하시지 않은 것 같다. 예수님 당시에도 대학이 있었고 유명한 선생들이 있었다. 유명한 선생들은 제자들이 배우러 찾아오기를 바랐다. 그들은 높은 지위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반대로 주님은 공식적인 학교를 세우지 않으셨다. 공식적인 코스를 정하신 것도 아니다. 세상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코스도 아니었다. 주님은 다른 선생들처럼 제자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찾아 나섰다. 제자들을 섬김으로 가르치셨다. 주님의 교육 형태는 질문과 대화 형식이었다. 일방적인 선포는 많지 않았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자연과 세상의 이치가 다 주님의 교과서였다.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교재는 없었다. 어부들에게는 어부의 일을 통해서, 농부에게는 농사짓는 일을 통해서, 우물가의 여인에게는 생수를 통하여 가르치셨다. 나도 이런 교육 방법을 따르고 싶다. 대화와 질문 형식을 많이 취하고 너무 지나치게 교재 중심으로 하지 않고 자연스런 삶의 과정을 통하여 가르치고 훈련하기를 원한다. 이들이 이 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한 일꾼으로 자라도록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