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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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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가얌배(Gayambe)산 등정 본문
2015년 9월 24일에 쓴 일기 내용이다. 가얌배 산은 만년설이 있는 산이다. 눈이 있는 산 중턱에 산장이 있다는 말을 듣고 변 선교사님 가정과 언어 선생 두 분과 함께 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 있는 산장은 약 해발 5,000미터 정도의 높이에 있었다. 사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가기에는 위험한 산행이었다. 그것도 1박 2일로 가서 많은 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변 선교사님 가정과 함께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에 가얌배 산에 올랐다. 언어 선생님들의 말에 의하면 산장까지 조그만 트럭을 빌려서 올라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막상 차를 빌려 산에 도착해보니 산장까지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산장까지는 아직도 먼 것 같은데, 해는 이미 지고 날은 어두워졌다. 두 시간 정도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이새가 4살, 혜준이가 3살, 형준이가 5살이다. 산소가 부족하고 추운 밤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아이들을 데리고 두 시간 동안 걷는 길은 정말 무섭고 힘들었다. 하룻밤 자야 한다고 싸온 많은 짐을 지고 가야했는데, 차에서 내렸을 때 우리들은 이미 다 지쳐있었다. 해발 5,000미터인 산은 공기도 부족하여 걷는 것도 힘들었다. 겨우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변 선교사님이 식사 기도를 하셨는데 기도하시면서 우셨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 우시는 것을 처음 본다.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그랬을까?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머리가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더구나 밤 10시가 되니 전기도 끊어졌다. 산장은 발전기를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고 있어서 밤 10시가 되면 전기를 끊는다. 아무런 난방장치가 안 된 곳이어서 너무나 추웠다. 아마 눈이 있는 곳이기에 온도는 영하일 것이다. 일행 모두가 거의 날을 새다시피 하고 아침에 일어나 준비해 간 라면을 끓여먹었다. 아침을 먹고 좀 더 높은 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몇 발자국을 떼었을 뿐인데 산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숨이 차고 바람이 불고 추운 날씨에 두통이 심해서 걷기가 힘들었다. 고산에 아무런 준비 없이 등산을 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무모한 행동이었는지? 아이들을 위해 온 산행이었지만, 아이들을 고생시키고 체력훈련만 한 셈이 되었다. 돌아오면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산장에서 느끼는 바람과 함께 날리는 구름과 하늘과 자연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경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갔던 모든 식구들이 한결같이 살아온 것이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다. 무서움과 추위와 아픔과 싸워야 했던 그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잠이 오지 않아서 밤새 기도했다. 억지로 기도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기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밤을 새면서 지금까지 에콰도르에 와서 지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감사했고, 앞으로의 사역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는 기회였다.
같이 갔던 언어선생님들의 사전 정보가 맞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고생을 더 했던 것 같다. 정보가 별로 신빙성이 부족한 이 나라에서 사람들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높은 산의 산장 관리인은 가톨릭 예수회 소속의 관리인이었다. 거의 모든 산장의 주인이 가톨릭교회라고 한다. 이 나라에 가톨릭의 영향력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들이 외국인이라고 산장 숙박료를 두 배를 받았다. 관광지마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관광지는 외국인에게 10배의 입장료를 받기도 한다.
힘든 가운데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힘들 때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함께 기도했다. 기도가 어려운 과정에서 힘을 주었고 위로가 되었다.
귀중한 경험이었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무리한 여행은 조심해야겠다. 앞으로 해발 4,000미터 이상은 올라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주 힘든 상황에서 두 가정과 언어 선생은 서로 하나가 되었다. 돕지 않고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었기에 도울 수밖에 없었다. 도울 때 서로 힘이 되었고 그래서 함께 잘 돌아올 수 있었다. 함께 돕는 것만이 이 세상을 사는 것임을 배울 수 있었다.
가는 도중에 교회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는데, 개신교 교회가 거의 없었다. 마을마다 성당은 있는데 교회는 없었다. 다시 한 번 교회가 없는 이 나라에 교회를 세우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는 사역을 계속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나님! 이 땅에 교회를 세우소서. 추수할 일꾼을 보내어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