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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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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고난과 신앙 본문
교회 연합회 목사 모임의 야유회를 준비하기 위해 과야밤바(Guyabamba)에 답사를 갔다. 함께 갔던 미겔(Miguel) 목사님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미겔 목사님은 우리 단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목사님이시다. 지금은 새로운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있다. 미겔 목사님은 현재 선교사 자녀 학교(Alliance Academy)에서 목수로 일하고 계시기도 하다. 평생 이 학교에서 목수로 일하면서 주일에는 목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분과 대화를 하는 중에 이분의 과거의 삶과 사역을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5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후배들에게 물려주셨다고 한다. 지금은 교회에 대한 핍박이 거의 없어졌지만 이전에 교회를 개척할 때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많은 핍박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옛날만큼 개신교 교회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 에콰도르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노(老) 목사님의 말씀이 내 마음도 아프게 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에콰도르 교회는 신앙에 대한 열심을 잃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에콰도르 신학교와 신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어 가고 있고 개척되는 교회도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교인들은 순수한 믿음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는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일하는 교회 연합회에서도 지도자 훈련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 없고 늘 똑같은 사람들이다. 에콰도르 교회는 전에 미국 선교사들이 사역을 할 때는 열심이 있었지만, 선교사들이 철수하고 난 지금은 전반적으로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에콰도르 교회를 보면서 나만이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겔 목사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복음이 한 나라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주님의 첫사랑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하며 교회를 세운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면서 첫사랑의 순수한 열심과 열정, 그리고 헌신이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미겔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신앙인의 열심이 줄어들기에 주위로부터 당하는 핍박도 줄어드는 것 같다. 우리 신앙인의 목표는 결코 안정적이고 풍요롭고 편리함을 누리는 것만은 아님이 확실하다. 오히려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인의 참된 모습일 것이다. 내면으로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서, 외형적으로는 세상과 싸우는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핍박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핍박을 얼마나 받느냐 하는 것, 신앙 때문에 고난을 얼마나 당하느냐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 신앙의 척도가 될 것이다. 핍박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핍박이나 고난이 없는 삶은 어쩌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선교사로서 내가 가진 신앙과 선교 사역이 나의 삶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도구는 아닌가? 아니면 나의 진실한 신앙이 외형적인 어려움과 고통을 만드는 요인이 되는가? 나에게 신앙으로 인한 핍박당함이 없다면 분명히 신앙이 내 삶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나에게 고난이 없다면 신앙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핍박이 없다면 주님을 위해 내가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고난이 없다면 세상적인 복락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난을 싫어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신앙이 있다면 오히려 내게 있는 고난을 즐거워해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선교사로서 사는 것에 대해 힘들어 하고 신앙인으로서의 고난과 아픔을 피하게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 주님으로 인해 어떤 핍박을 당하고 있는가? 만약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평안만 추구하고 겪어야 하는 고난을 부담스러워 한다면 나는 초보적인 신앙인임이 분명하다. 나는 고난과 핍박당함을 사모하는 신앙을 가질 수는 없는가? 고난을 추구하는 것이 선교사가 가져야 할 신앙인데 아직도 평안함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에콰도르 신앙인들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며, 미겔 목사님의 지적이 바로 내게 한 지적임을 깨닫게 되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주님은 내게, 그리고 그분의 자녀에게 평안을 주시지만 그 평안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평안이 아니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살면서 당하는 고난 중에 얻을 수 있는 평안이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기를 원한다. “주님! 제가 고난을 피해가는 사람, 고난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선교사라는 것 때문에 고난을 추구하며 내게 다가오는 고난으로 인해 감사하며 사는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해 주세요.”(20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