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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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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 베드로의 기도회 본문
사도행전 12장을 보자. 이야기는 헤롯 왕이 사도 야고보의 목을 베었다는 슬픈 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그는 베드로도 체포한 후 공개 재판을 거쳐 같은 방식으로 베드로를 죽일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교회 전체가 모여 베드로의 생명을 구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다. 베드로도 분명 같은 제목으로 기도했을 것이다.
마침내, 그의 재판을 하루 앞두고 천사가 그의 감옥에 나타난다. 그리고 두 로마 군인 사이에서 쇠사슬로 묶인 채 깊이 잠들었던 베드로를 깨운다. 쇠사슬이 벗겨진다. 천사는 베드로에게 옷을 입으라고 말하고 그를 이끌고 나간다. 감옥 문들이 하나씩 기적적으로 열린다.
이제 이 이야기의 흥미로운 부분을 살펴보자.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기도한 내용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상상한다는 뜻이라면, 베드로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천사가 그를 깨웠을 때, 그는 벌떡 일어나 “오실줄 알았습니다.”라고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꿈을 꾸거나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몸으로 도로 한복판에 서고서야 그는 하나님이 정말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음을 깨달았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더 이상해진다.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깨달은 베드로는 곧장 교인들이 그의 석방을 위해 모여 기도하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그는 대문을 두드리고 나서 여종에게 자신이 베드로이며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한다.
여종은 흥분한 나머지 베드로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그녀는 헐레벌떡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모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다.
그들의 반응은 의미심장하다. 기뻐 뛰는 사람이 없다. 하이 파이브도, ‘할렐루아’도, ‘예수님 감사 합니다’라고 외치는 소리도 없다.
오히려 여종이 철없는 소리를 한다고 야단만 친다. “얘야, 그분은 로마 감옥에 있어, 고라 감옥은 그냥 걸어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아마 그의 찬사인가 보구나, 우린 계속 기도해야 해.”
그 사이 베드로는 현관에 서서 계속 대문을 두드린다. 누군가가 마침내 문을 열어주자 베드로가 들어온다. 그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기쁨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도우셨다는 찬양이 아니었다. “내가 뭐랬어”라는 말도 없었다. 그저 놀라움 뿐이었다.
이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베드로와 기도회에 참석한 교우들은 하나님이 정말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거라는 기대가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의 의심이 어찌나 컸던지 하나님이 정말 기도에 응답하셨는데도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
오늘날의 많은 설교에 따르면,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을 믿음의 전형과도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품었던 믿음과 신뢰는 그분이 도우러 오실 거라는 당찬 확신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신뢰 안에서 이루어진 순종의 행위로 드러났다. 그것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모여서 기도한 모습에서 드러났다.
이 이야기의 핵심 교훈은 의심 없는 믿음과 기도가 위대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때도 그분은 능히 우리를 도우러 오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으로 나서서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다.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일, 승산이 없는 줄 알면서도 모여 기도하는 일, 또는 다른 어떤 순종의 행위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그 이후에 벌어질 일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일상을 걷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영성: 래리 오스본) 2020. 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