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Today
- Total
선교교육 연구원(IMER)
+ 주님의 음성을 경청하라 본문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첫 걸음은 경청이다. 그 다음은 ‘내 것’을 등지는 걸음이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나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일을 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뢰 가운데 행하는 것인가?”
우리는 자신이 언제 두려움으로 행하고 언제 사랑으로 행하는지 알고 있다. 항상 사랑을 선택하고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것, 이 역시 작은 변화다. 우리의 말이나 생각의 배후가 두려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품고 생각할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두려움에서 방향을 틀어 사랑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주님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두려움을 등지고 사랑이신 그분께로 가야 한다. 부요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 삶을 고달프게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을, 그것도 풍성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분이다. 물론 우리가 초연하게 우리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도 하시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고 우선은 생명을 향해 나아오라고 하신다. “너희에게 풍성한 생명이 약속된 그곳만 바라보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그 생명의 자리를 바라보길 바란다. 영적 삶을 가꾸려거든 우리의 생각 속에서 주님이 떠나시지 않게 해야 한다.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는 “그분을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으라”라고 말하곤 했다. 온전히 그 분과 함께 하며 그분께 친숙해지라는 의미다. 우리는 “와서 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늘 귀를 열어 두어야 한다. 주님 곁으로 가서 예수님께 친숙해지면 그분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향해 손 내미시는 사랑의 초대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오라는 초대다. 일단 그곳으로 가면 쉬어진다.
어쩌면 ‘쉽다’라는 단어는 꼭 맞는 표현은 아니다. 다만 주님께 이끌려서 그 길을 간다는 뜻이다. 영적 삶은 무언가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의 두려움을 버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 이끌리는 일이 먼저다.
우리의 생각 속에 주님과 그 분의 나라와 말씀이 떠나지 않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 신기하게도 그곳은 매사를 결정하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우리 눈이 그 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알기에 그곳에 머물고 싶어진다. 진정한 갈망이다.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소명이 있어 그 부름에 따라야 한다. 그 부름을 믿고 따르면 우리의 삶은 흥미진진해진다.
거창하게 할 것 없이 먼저는 주님의 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경청하라. 그러면 다음 내디딜 걸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길로 가려는 갈망도 따라올 것이다. 그 길은 언제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옮겨 가는 길이다.
“오라.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의 길: 헨리 나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