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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책무

후앙리 2019. 3. 30. 23:20

<우리 선교사님은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는 제목의 어떤 성도의 고백이다.
“선교사는 늘 하하 웃으며 사니까 삶이 항상 기쁜 줄 알았습니다. 뺀질거리고 퉁명스런 우리의 태도에도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선교사는 늘 충만한 복음과 은혜로 인해 조금의 불평도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비자문제로 나라에서 어려움 당해도 다 이겨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는 흙먼지 날리는 날씨나 영하 40도의 한겨울 추위에도 사명감으로 즐겁게 이겨내는 줄 알았습니다.
선교사는 늘 재정이 충분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늘 슬쩍 나눠주는 모습에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는 늘 건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모임에는 빠지지 않았기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는 고향을 안 그리워하는 줄 알았습니다. 본토친척 아비 집을 완전히 떠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님은 가족이 안 그리운 줄 알았습니다. 한국의 가족이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었거든요.
선교사님은 사명과 은혜로 인해 아무런 미래 걱정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늘 우리에게 하나님께 믿음으로 인생을 맡기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제 새벽에 강대상 뒤쪽에서 흐느끼는 모습에서 선교사도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힘들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선교사 가정도 우리와 똑같이 힘들어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업 중에 어머님 얘기만 나오면 늘 눈시울 붉히는 것을 보고 고향과 어머님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모든 문제의 해결을 허둥지둥 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뢰한다는 것이 우리와 다른 것을 알았습니다.”

선교사가 보통 사람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표현한 글이다. 선교사가 보통 사람과 똑같은 존재라면, 그들도 똑같이 잘못할 수 있고 똑같이 넘어질 수 있다. 보통 사람처럼 자신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않을 수도 있고 과다한 욕심으로 살 수도 있다.

선교사의 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사가 책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않을 수 있고 감당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선교사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다면 굳이 선교사 책무를 말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교사의 책무를 더 많이 얘기해야 하는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만큼 선교사가 책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책무를 감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무’란 “자신이 해야 할 임무에 대한 책임”이다. 성경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 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에 근거해서 선교사의 책무를 말한다. 그러므로 책무는 인간이 만든 규칙을 이행하기 전에 주님의 명령이기에 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또한 “계산하라”는 말씀을 한다. 일을 하면서 계산하고 점검하는 것이 성경의 사상이다. 그런 면에서 선교사란 단순히 사역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책무를 감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가 임무에 책임을 다하기 위한 영역은 몇 가지가 있다. 재정적인 부분과 사역적인 부분이 있다. 또한 가정적인 부분과 후원자들에 대한 부분, 그리고 현지인들에 대한 책무가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책무를 감당하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선교사들을 볼 수 있다. 가정의 책무를 잘 감당하지 못하면서 사역의 책무만 감당하는 선교사가 있다. 이런 선교사는 선교사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중요한 가정에 대한 책무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선교사 중에는 아내와 이혼하고 나서 현지인과 결혼하고 계속해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가정에 대한 책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서 선교사역의 책무만 감당하는 것은 선교사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교사의 책무를 말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해야 한다. 그것은 진실성(정직성)과 투명성, 그리고 효율성이다.
첫 번째, 진실성은 선교사의 양심에서 나온다. 양심에 거리끼지 않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정식성이다. 표면적으로는 투명하게 보고할 수 있지만 그것이 양심에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도 양심에 기반으로 하는 정직성이 없다면 별 소용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집사의 자격을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하였다. 지도자로서 깨끗한 양심이 전제되어야 책무를 이야기 할 수 있다. 깨끗한 양심은 믿음 있는 자로서 기본적인 덕목이다. 그러기에 선교사 책무를 말할 때에 먼저 선교사의 자질을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교사의 자질은 선교사의 선발과 훈련과 관련이 있다. 선발할 때 자질 있는 자를 선택해야 하고 훈련을 통해 신앙인으로서, 선교사로서의 기본적인 양심을 회복시켜야 한다. 또한 양심에서 나온 진실성이 있는 선교사라면 선교사 책무 시스템이 약간 부족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투명성은 선교사가 투명하게 살고 투명하게 보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의 책무를 말할 때 중요한 것이 재정과 사역에 대한 책무다. 선교사에게 있어서 재정과 사역이 누구에게나 알려지고 보고할 때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입이 얼마나 들어왔으며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떤 사역을 하고 있으며, 그 사역의 열매가 무엇인지에 대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투명한 보고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가정에 대한 강의를 할 때 돈과 시간 사용에 있어서 부부가 서로 투명하다면 외도를 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외도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돈을 어떻게 썼으며, 어디서 시간을 보냈는지 배우자가 정확히 안다면 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녀들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부모가 투명하게 알 수 있다면 자녀가 탈선하는지, 혹은 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다. 그만큼 투명성은 선교사에게도 똑같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투명하지 못한 부분이 실제로 존재한다. 보고되지 않는 재정이 있다면 재정에 대한 책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사역을 한다면 사역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선교사에게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으면 보안지역이기에 가르쳐 줄 수 없다, 혹은 개인적인 일이기에 알려 줄 수 없다는 대답을 하는 선교사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이 아니라 자신의 재정을 유리 상자에 있는 것처럼 재정과 사역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선교사만이 아니라 지역 교회나 선교단체도 재정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재정이 투명해야 한다. 그러나 재정 보고를 하지 않는 교회나 선교단체고 많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면 왜 재정을 공개할 수 없는가? 재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으며, 부정하게 사용한다는 의미이고 책무를 잘 감당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세 번째는, 효율성이다. 혹자는 재정과 사역을 투명하게 보고하다보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효율성은 문화와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서구 단체나 서구 선교사들은 식사 한 끼라도 가계부에 다 기록하고 보고한다. 손님이 왔으면 그 손님의 밥값을 더 청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밥 한 끼를 대접받았으면 생활비에서 삭감해서 받는다. 이처럼 다 기록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한 달이 2-3일은 꼬박 재정 정리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런 단체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은 밥 한 끼 먹는 것도 긴장하고 다른 사람과 쉽게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 문화는 관계문화이기에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이 사역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밥을 사 주는 것이 곧 사역이다. 그러나 이런 서구 선교단체에 속한 선교사들은 재정의 투명성 때문에 밥을 사주는 것이 부담이 된다. 중국 같은 선교지에서는 자연히 효율성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이런 지역에서는 책무를 투명하게 하기보다는 효율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자의 시간 사용도 서구의 시간 개념과 동양의 시간 개념이 다르다. 한국 목회자들은 보통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심방가고 설교할 준비를 한다. 그러기에 낮에 좀 쉴 수도 있고 밤에 심방을 갈 수도 있다. 근무시간이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서구(미국) 목회자는 근무 시간에만 사역을 한다. 밤 시간이나 새벽시간에는 교인들에게 어떤 일이 있어서도 심방을 가거나 교회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누가 더 책무를 잘 이행하며 누가 더 효율적인가? 이것은 문화의 차이다. 한국에서 부목사가 담임 목사가 퇴근하지 않는데 저녁 6시가 되었다고 퇴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에 미국 목회자들이 한국 목회자들을 볼 때 6시가 되었는데 퇴근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한국 목회자가 낮 시간에 열심히 일하지 않고 밥ㅁ에 사역하는 것을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효율성은 문화와 관계가 있으므로 책무의 기준도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효율성을 책무의 기준에 반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책무의 기준을 한국 선교사의 책무의 기준으로 그대로 적용해서는 위험할 수 있기에 문화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효율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사와 교회, 선교단체는 책무에 대한 이행을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신중하게, 철저하게 이행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이 이행해야 할 책무 중에 중요한 것은 재정이다. 재정에 대해 청지기적 의식을 가지고 투명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다. 선교사는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며, 교회를 대표해서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교사의 재산은 엄밀히 따지면 선교사 개인의 것이 아니다. 선교사가 후원모금을 할 때도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며, 선교비 수입과 지출을 가능하면 창구 일원화(선교단체에서 관리하는 계좌를 하나만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재정이 너무 투명하면, 선교사로서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해 선교후원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는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선교사가 사용해야 하는 재정은 후원자의 생각보다 훨씬 많을 때 후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원자들은 재정의 액수보다도 투명한 것을 더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투명하게 보고하여, 재정 수입이 많다고 후원을 중단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정은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채워주실 것이다. 후원자들은 재정이 투명하면 후원을 더 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다음은 한 선교단체의 선교비 관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규칙이다.
1. 선교비는 개인의 재산이 아닌 하나님의 소유이다.
2. 개인에게 지정된 헌금도 사역을 위한 것이며, 사유재산은 아니다.
3. 개인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선교비를 관리하고 사용한다.
4. 재물의 청지기로서 신중하고 성실하게 선교비를 사용한다.
5. 재정사용에 있어서 건덕과 균형을 유지하도록 힘쓴다.
6. 하나님이 사역에 필요한 재정을 공급하시리라 믿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7.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피한다.
8. 생활수준 및 방식은 현지인과 괴리감을 극소화하도록 힘쓴다.

선교사들이 가져야 할 책무 중에 사역에 대한 책무도 중요한 부분이다. 선교사역은 선교사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지인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역을 선교사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가 원하는 사역이 아니라 현지인을 위한 사역을 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사역을 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기본적으로 기도편지를 통해서 생활과 사역을 후원자들에게 보고해야 하고 사역에 대한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여 선교 단체 본부에 보고해야 한다. 선교단체 본부는 선교사의 보고를 받고 철저한 사역 디브리핑을 통해 사역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선교사의 사역과 생활 전반적인 것을 평가할 수 있는 한 선교단체의 평가 양식이다.
1. 당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2. 당신과 가정의 건강 상태는? 당신 가정의 필요가 채워지고 있는가? 장신 가정에 특별한 문제/ 염려가 있다면?
3. 당신의 생활환경은 적절하다고 여기는가? 변화를 원하는 부분이 있는가? 그 변화를 위한 특별한 계획이나 대인이 있는가?
4. 당신의 후원자와 정기적으로 교신하고 있는가? 당신의 재정후원은 충분한가? 당신의 재정을 위해 현지행정부가 제 3자의 추천서를 써주기 원하는가?
5. 당신의 직책에 요구되는 일, 책임이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기를 원하는가?
6. 당신에게 맡겨진 일의 분량 미추 성취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추가적 훈련이나 다른 유형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으로 무엇?
7. 당신의 업무 중 특별히 성취감 및 만족도가 높은 분야들이 있다면? 당신의 업무에 있어서 당신이 가장 유능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당신의 능력 중 현재의 업무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당신의 업무 중 어렵거나 좌절되거나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분야가 있다면?
8. 당신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개발해야 할 추가적 기술이 있다면?
9.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10. 현재 당신이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 중 특별히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11. 현재 당신이 업무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 중 특별히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12. 당신은 나(현지행정 책임자)와 의사소통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개선하거나 변경하기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당신과 나 사이의 의사소통 결과에 대해 만족하는가? 당신과 나는 더 자주 혹은 뜸하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13. 당신이 관할하는 사역자에 대해 어떻게 감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감독을 받은 사역자에게 어떤 반응을 얻는가? 반응 체제를 개선할 방법이 있다면?
14. 업무 변경을 원하는가?
15. 특별히 선호하는 분야나 유형의 일이 있는가?
16. 당신이 갑자기 사역지를 떠나야 할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당신의 일을 떠맡을 적임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17. 우리가 당신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할 특별한 제목이 있는가? 바쁜 일정과 촉박한 시간 때문에 주님과의 관계가 등한시해지는 문제라면 나는 기꺼이 따로 시간을 내어 당신과 그 문제를 의논하고자 한다.
18. 혹 당신이 의논하기 원하는 것 중 빠진 분야가 있다면?

이상과 같이 선교사의 책무는 선교사 평가와 관련이 있다. 선교사 평가를 통하여 선교사 책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기에 선교단체는 선교사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선교단체가 책무체계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한국문화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현장 선교사들이 책무체계에 대한 시스템 구축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선교사들은 대체적으로 평가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한 관계문화인 한국인의 특성상 책무체계 시스템을 만들어도 그것을 시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단체는 이 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선교사를 도와주고 케어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교사를 바르게 인도할 책무가 선교단체에 있다. 선교단체가 선교사에게 질적인 케어를 잘한다는 의미는 결국 선교사 평가 시스템과 선교사 훈련을 통해 선교사들이 책무를 잘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교단체의 책무이다. 선교단체는 선교사들을 더 건강하고도 바르게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후원하는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선교사 보고 시스템과, 평가 시스템, 재정 원칙 시스템을 만들고 철저히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와 선교사의 가교역할을 잘하는 것이 선교단체의 책무이다.

선교사와 선교단체만이 책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후원자 포함)도 선교에 대한 책무가 있다. 그 책무는 선교단체와 선교사를 잘 도와주고, 관리하는 책무다. 선교사가 책무를 잘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교회의 책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재정적인 책무를 잘 감당함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부족하다면, 그 부족한 재정을 채워주어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선교사가 재정 보고를 하면 그것을 감사監査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사가 병이 들었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도와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선교사를 제대로 케어해주는 것이 교회의 책무이다. 아울러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서 선교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도 교회의 책무에 속한다. 성도들이 선교사로 헌신하고자 할 때 선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신앙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시키는 것도 교회의 선교책무이다.

선교사와 선교단체, 그리고 후원교회와 성도가 각자 자신의 책무를 잘 감당할 때 한국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좀 더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는 자신이 속한 위치가 선교사, 선교단체, 혹은 교회(후원자)인가를 인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감당하고 나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기관의 책무를 물어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의 책무를 먼저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한국 교회가 선교책무를 감당함으로 좀 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