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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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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15년 3월 23일(월) 본문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1절)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2절)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3절)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4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5절)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6절).
+ 말씀 이해
시편 기자는 억울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그의 고통의 순간에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표현합니다(1-3절).
2. 원수에게 억울함을 당한 상황을 그대로 아룁니다(4절)
3. 모든 상황을 아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고백합니다(5절상).
4.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5절하)
5. 원수를 용서하며 그에게 벌하지 말라고 기도합니다(6절)
+ 묵상과 적용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시편 기자의 기도의 형태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요?
기도하면서 우리의 고통과 번민과 마음의 힘든 상황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마음의 힘든 상황을 하나님께 그대로 표현해보지 않으시렵니까? (1-3절)
기도할 때 지금 억울함을 당한 그 현실을 그대로 아뢸 수 있습니다. 지금 당하는 억울함은 무엇입니까?(4절)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떤 하나님입니까? 지금까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떻게 대해주셨는지요? (5절상)
5. 문제를 해결하게 해달라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시편 기자의 모습에서 우리가 고백할 죄는 무엇이 있는지요?(5절하)
6. 시편 기자가 원수를 용서했던 것처럼 당신을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지요?
+ 버거킹에서 기도하기
가끔 식당에서 기도하는 일이 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때는 큰 맘 먹고 기도를 생략하기도 한다. 한번은 내 그리스도인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식당에서 기도하는 게 조금은 멋쩍다고 생각하지 않나? 내 말은 아이들은 뛰어 다니며 시끌벅적 떠들어 대는데 버거킹 칸막이 의자에서 기도할 기분이 정말 나느냐 이거야.” 나는 썩 내키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내가 으레 식전 기도를 하는 이유는 특별히 “영적인” 느낌이 들어서가 아니다. 만일 기도할 기분이 들깨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아마도 가뭄에 콩 나듯 기도했을 것이다. 내가 식당에 앉아마자 기도하는 이유는 정확히 말해서 기도할 기분이 자연스레 찾아들지 않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은 잠시 멈추고 무언가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며 그분의 은혜는 시끌벅적한 패스트푸드 식당에 앉아 있는 나에게도 변함없이 임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특별한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특정한 분위기아 형성되어야 누군가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건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만일 사람들로 북적대는 백화점에서 우연이 아는 사람과 마주친다면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설령 그 사람에 대해 아주 틴근한 느낌이 들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더라도 말이다. 그 사람이 거기에 있기에, 그의 존재함을 마땅히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 장소가 버거킹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은 피조 세계 전체에 미친다. 엄밀히 말하면 치츠버거와 감자튀김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칸막이 의자 주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패스트푸드 식당은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더 큰 세계의 한 부분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내 영혼에 유익하다. 뿐만 아니라 조용히 두 손을 모으다 보면 주위 사람들도 세속주의자들의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식당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버거킹에서 기도하기 <리차드 마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