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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1년 9월 30일(목)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1년 9월 30일(목)

후앙리 2021. 10. 8. 14:09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16)

 

+ 말씀설명

바울은 로마 교회에 전하는 편지 마지막에 복음선교에 대한 말을 하면서 끝맺는다. 바울은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선교. , 예수 그리스도와 선교에 대해 바울은 마지막에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복음)과 선교(그리스도를 전파함)는 어떤 것인가?

1.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 나타난 것이다.

2.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다.

3.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다.

4. 이 복음으로 성도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복음)과 선교(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성경(구약 포함해서)의 핵심이다. 이것은 영세 전부터 계획 된 것이다. 이것은 글로 알게 하신바다. 이것은 신비의 계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야 할 것이다. 복음과 선교의 위대함과 목적을 바울은 다시 기억하도록 권면하면서 편지를 끝맺고 있다.

 

+ 묵상과 적용

- 나는 성경의 핵심이 복음과 선교인 것을 인정하는가?(누가복음 24:44-46절 참조)

- 복음이 창세전부터 계획한 바이고, 신비며, 이미 기록된 말씀이라는 사실이 내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 복음과 선교를 위해(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복음과 선교의 의미의 깊이를 알아 그것에 동참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회와 의료와 경제는 더 불안해졌는데, 이 땅에 속히 평화와 안정이 임하게 하소서.

 

+ 성경본문(16)

2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2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24 (없음)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바울과 한국교회 신앙관

한국 교회 신앙관 안에는 사역이 우선이라는 사상이 들어 있다. 사역이 우선이라는 말은 사역을 위해 개인의 일상의 삶, 가정을 희생해도 되는 생각이다. 사역을 위해 인간적인 즐거움과 기쁨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의 일상의 소소한 삶과 사역을 구분하는 것도 들어 있다. 삶과 사역이 별개라는 것이다. 이는 이원론, 즉 성과 속을 구분하고, 사역과 세상에서의 삶을 구분하고 차등 하는 사상이 들어 있는 것이다. 사역은 거룩한 것이지만, 개인의 일상의 삶은 세속적이라는 생각도 들어 있다. 거기다 인간적인 면, 인간적인 즐거움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 은총을 경히 여기는 경향도 있다. 오로지 사역이 중요하고 사역의 결과가 좋아야 하며, 사역을 위해 가정이나 세상의 인간관계를 무시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인간적인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 별 가치가 없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이런 것들은 거추장스러운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억눌러야 하고 인간적인 사소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신앙관이 좀 더 극단적으로 치우칠 경우 지나친 율법주의와 금욕주의로 흐른다.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보다 앞서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 절제해야 하고 인간적인 것은 부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요즈음 로마서의 끝 부분을 묵상하면서 바울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바울은 동역자와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며 문안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그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인정하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과 자연스런 인간됨을 바울은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다. 금욕주의자들이 육신의 몸을 근신하고 생활을 절제해야 한다는 생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바울은 사역만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울은 오히려 인간적이었다. 사역보다 한사람의 가치를 더 중요시 여겼다. 한 사람의 행위보다도 인간됨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인간이 갖는 서운함, 감정, 노함도 인간에게 필요한 사항임을 인정하였다. 사역을 위해 열심을 다한 바울이었지만 사역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으로 조그만 감정에 충실했으며, 슬프고 기쁘고 외롭고 아픈 것을 드러냈다. “사역에만 집중한 사람들과는 달리 사역 이외의 인간적인 면의 소중함을 인정한 것이다.

 

바울은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을 지나치게 구분하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것이 은혜였다. 육체의 잘남도, 부족함도, 건강의 나약함도, 핍박도 은혜로 생각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인정하였으며 그것을 신앙으로 잘 승화시켰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인간적인 부분을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필요 없다고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것도 은혜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은혜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우리도 교회를 볼 때, 사역 중심의 교회로만 가지는 않는지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역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감정, 서로의 교제, 사랑, 인간의 나약함을 오히려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가하며, 모든 것이 소중하며, 하나님이 주신 세상의 모든 것을 존귀하게 생각하는 그런 폭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넓은 뜻을 오히려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