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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2년 3월 22일(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2년 3월 22일(화)

후앙리 2022. 3. 21. 22:54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119)

+ 말씀설명

시편 119편에서 기자는 주의 말씀(율법)에 대한 심정과 기도와 바람을 고백한다. 주의 도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며,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주의 법을 사모한다고 고백하며, 주의 말씀이 자신의 입에서 떠나지 말기를 소원한다.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의 율례를 읊조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섯 번씩이나 강조하는 다짐은 주의 율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지키고자 반복해서 다짐하는 시편 기자의 간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묵상과 적용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주의 말씀을 공부하고(성경공부), 듣고(설교를 듣고), 연구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요즈음은 성경 필사가 성도들에게 인기(?). 모두가 말씀을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다. , 그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일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중요하다. 아는 것보다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것은 더 악한 것일 수 있다.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행함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앎은 손해가 될 수도 있다. 시편 기자가 강조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사모하고 연구하고 듣고 필사하는 목적이 말씀대로 살기 위함이다. 시편 기자는 그래서 말씀을 지키는 것을 강조했을 것이다. 또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읽는 것 등의 말씀에 대한 행위보다 더 어렵기에 강조했을 것이다. 말씀을 행하는 것이 목적이며, 말씀을 행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은 말씀을 지키기 위해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삶의 변화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변화란 손해를 가져올 수도 있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가졌다, 삶의 변화란 귀찮으며, 싫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강조한 것이다.

나는 말씀을 지키기 위한 소망이 있는가?

말씀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더 필요한가?

+ 오늘의 기도

1. 제가 주의 말씀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행할 수 있게 하소서.

2. 칠레에서 성당과 예배당을 포함한 종교 건물에 대한 방화가 중단되고, 정부 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합법적인 보호를 잘 할 수 있도록

 

+ 성경본문(199)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8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41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45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46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47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디퍼런스: 다름은 어디서 오는가?

다름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서 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 다른 은사를 주셨다. 여기서 은사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교회에서 은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고린도서나 예베소서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은사라는 단어를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하나님이 주신 재능, 하나님이 주신 잘할 수 있는 어떤 것들로 은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좀 더 넓게는 후천적으로 가진 은사, 즉 계발된 기술이나 직업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다

첫 번째 은사의 특징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은사는 인간이 스스로 가진 것, 습득한 것, 소유한 것이 아니다.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은사의 원래 뜻은 값없이 주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은사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한다. 자신이 잘나서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잘 나서 가진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야구에서 3루에 대타로 나간 사람은 홈에 들어오려면 1루만 들어오면 된다. 3루는 이전 타자가 친 3루타 때문에 그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치 자신이 3루타를 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홈에서부터 시작하여 1, 2, 3루를 거쳐 홈에 들어온다. 이처럼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많이 가졌다고, 3루에서 시작하였다고 3루타를 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은사도 주어진 것이다. 인간이 생성해 낸 것이 아니다. 인간이 잘 나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은사를 가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은사를 주실 때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하셨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예배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해서다(43:21). 인간의 존재 목적이 분명한 것처럼 인간에게 은사를 주신 것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다. ,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사용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은사를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은사는 하나님이 즐거워하는 일에 써야 한다. 인간은 이 은사를 가지고 자신을 뽐내고 과시해서는 안 된다. 자기 은사보다 부족한 사람들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선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

재능기부라는 말이 있다. 참 좋은 말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 말 안에는 내 재능을 준다는 뜻이 들어 있다. 사실은 내 재능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다. 그래서 재능을 기부할 때 내 것을 나누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하나님께 드리는 심정으로 겸손하게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헌금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헌금은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물질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물론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여 얻은 것이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근본적으로 주셨다. , 건강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재능도 주셔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가 번 수입은 모두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것이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으로 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것을 내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청지기 원리가 있다. 하나님이 주시되 그것을 잘 관리하도록 내게 주신 것이다. 청지기 원리는 내가 그것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혜롭게 잘 사용해야 한다. 그것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며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그분이 기뻐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