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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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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8월 1일(목) 본문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장)
+ 말씀 설명
오늘 말씀은 많은 성도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바울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성도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는데, 그 착한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말씀이다. 여기서 착한 일이란 ‘구원’이다. 구원의 일을 시작했다는 것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는데, 이 세상에서는 구원받은 자라도 과정이 어려움이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겠다는 뜻이다.
구원받는 자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의심과 고난과 아픔과 슬픔과 죄의 유혹을 견뎌야 한다.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과정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다. “너희 안에”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 안에” 구원을 이루신 분이 구원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우리 안에” 계실 것이다.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지키실 것이다. 그 과정 가운데 함께 하실 것이다.
마침내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바로 바울의 확신이었다.
+ 묵상과 적용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는가?
+ 선교적 실천
구원이 완성되는 그 날까지 우리 교회 공동체가 세상에서 감당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구원이 완성되는 일에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오늘의 기도
1. 그리스도의 복음이 끝날까지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소서.
2. 남미의 각 나라들이 낙후된 지역 보수와 환경 개선에 힘쓰고, 기후 변화에 따른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적실한 대책이 마련되도록
+ 성경 본문(빌 1장)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 끝을 잘 맺어야 한다.
어제 TV에서 웰다잉 단체를 만들어 일하시는 전직 국회의원의 인터뷰를 잠깐 보았다. ‘웰다잉’은 “잘 죽는 것”이라는 뜻이다. ‘웰빙’은 “잘 사는 것(직역하면 좋은 존재, 좋은 삶의 뜻)”을 말한다. 웰빙도 중요하지만 웰다잉도 중요하다는 것이 이분의 주장이었다. 이분의 주장은 상당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모든 사람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하다. 한국 사람에게는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끝을 잘 맺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렇지만 시작만큼 끝도 중요하다. 물론 과정도 중요하다. 어쩌면 어떤 일을 할 때, 시작과 과정보다 끝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 ‘뒤끝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그 사람에게는 최고의 수치스러운 말이다. 사람은 어떤 일에서나 끝이 좋아야 한다. 인생도 잘 마쳐야 한다. 즉, 죽음도 잘 죽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을 잘 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TV에서 인터뷰를 했던 전직 국회의원은 그리스도인인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간에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기에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분이 하는 웰다잉 운동은 바람직하고 좋은 것 같았다.
한국 사람은 죽음에 친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이것은 유교 문화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죽음을 터부시하고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 내가 사역했던 에콰도르나 필리핀, 그리고 미국 사람들은 죽음이 그리 멀지 않는 삶을 산다. 그들은 공동묘지가 가족이 놀러 가는 공원이다. 공동묘지를 중심으로 집이 지어져 있기도 하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숨겨두지 않는다. 조문객들이 얼굴을 볼 수 있도록 관 속에 안치해놓고 고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장례를 보통 집에서 치르는데 어린아이들도 시신을 보며 주변에서 즐겁게 뛰논다. 장례식은 엄숙하기도 하지만, 유머와 소망이 담긴 장례식, 눈물과 웃음이 함께 하는 장례식을 치른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죽음이 낯설지 않고, 죽음을 친구처럼 생각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죽음은 너무 멀리 있다. 죽음에 대해 외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한국의 문화이다. 그래서 잘 죽기 위해서는 안락사를 같이 토의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TV에서 인터뷰한 사람은 주장하였다. 잘 죽기 위해서는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이별을 해야 하고 죽기 전에 너무 고통스러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끝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은 과정이다. 인생의 한 과정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 시작하고 죽으면서 끝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는 것도 한 과정이며, 죽는 것도 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출생 전에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영원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은 이후에도 삶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세상에서의 삶이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아는 천국이요, 하나님 나라다.
구원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끝까지 구원을 이루신다고 말씀하신다(빌 1:6).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지키신다.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