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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2월 10일(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2월 10일(월)

후앙리 2025. 2. 10. 05:04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

 

+ 말씀 설명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 들어가 이삭을 잘라 먹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고 비판하였다. 안식일의 율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다윗과 아비아달 대제사장도 배가 고팠을 때 율법에 어긋났지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었다고 답하셨다. 그러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지키는 율법보다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는 것, 즉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율법의 목적과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제정하신 주인이시기에 안식일의 규정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묵상과 적용

혹시 나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규칙과 지켜야 할 문화와 전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 공동체가 법이 아닌 사람의 기준을 두지 않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 오늘의 기도

1. 율법의 참뜻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든 삶의 초점을 사람에게 두고 살게 하소서.

2. 경제 침체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중남미 사회에 속히 안정이 찾아오고,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 성경 본문(2)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교인과 신자

교회 다니는 사람을 교인이라고 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혹은 신자라고 부른다. 교인과 신자는 다르다. 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예수를 믿는 신자는 아니다. 교인이 되는 것보다 신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가 믿는 대상은 예수다. 신자가 믿는 대상은 교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분은 예수다. 교회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도하는 기준이 교회에 오게 하는 것에 있을 때가 있다. 물론 교회 다니라고 권면은 할 수 있다. 교회 다녀야 예수를 믿을 수 있는 확률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 우리가 전해야 할 분은 예수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교회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교회에서 교회에 대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 대한 것, 즉 교회 생활, 교회의 규범을 따르는 일, 교회에서 하는 행동보다 앞서야 할 것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의 구속,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말씀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예수님의 규범보다 교회의 규범이 앞서서는 안된다.

오늘 나는 교회 설립 예배에 다녀왔다. 순서를 맡은 목사님들이 주로 교회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그것까지는 이해하지만, 노회, 총회에 대한 언급이 다른 것보다 많았다. 그것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는 없고 교회와 노회와 총회만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때로 교회의 규범이 예수님의 규범과 동일하지 않을 때가 있다. 심지어 교회의 규범이 예수님의 규범보다 앞설 때도 있다. 이것이 심해지면 속 내용인 예수님은 없어지고 겉모습인 교회의 규범, 즉 껍데기만 남는다. 이것이 성경의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문제였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규범인 생명보다도 그들이 지켜야 하는 율법이 우선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율법을 숭상하는 율법주의자가 되었다. 오늘날도 예수님이 아닌 교회를 숭상하는 교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교회가 예수보다 앞서거나 중요하게 되는 경우가 교회에서 많이 일어나는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교회는 신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신자가 교회를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신자를 판단하고, 명령하고, 제어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교회에 얽매이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예수님께 예속되고 구속되고 예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 교회는 성경시대의 유대인 율법주의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