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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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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2월 8일(토) 본문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막 2장)
+ 말씀 설명
본문(막 2:13-22절)은 여러 가지 사건을 말씀한다.
1.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서 제자로 삼는 사건이 있다. 예수께서 레위의 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실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기에 죄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문제 없다고 말씀하신다.
2. 바래새인들이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혼인집 신랑과 함께 할 때는 금식할 필요 없다고 대답하신다. 신랑이 빼앗길 날(즉 예수님이 신랑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날)에는 금식해야 할 것이라고 하신다.
3. 마지막으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은 여러 가지를 말씀하시지만 결국은 바래새인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시고 예수님은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신 분이심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옛 율법이나 전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식과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상은 죄인을 구분하지 않고 용서하고 유대인들이 가진 전통이 아닌 새로운 생명과 질서를 가져오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잘못된 전통이나 문화, 사상으로 인해 사람들을 차별하고 정죄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의 복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새생명을 회복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의 낡은 생각이나 습관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차별한 것이 있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 공동체가 낡은 전통으로 복음을 역행하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고치고 변화되고 복음이 편만한 교회가 될 수 있게 할까?
+ 오늘의 기도
1. 예수님처럼 잘못된 전통과 사상의 벽을 무너뜨리고 용서와 사랑의 복음으로 살게 하소서.
2. 미국 기독교인들이 세속화되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섬기며 나눠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 성경 본문(막 2장)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 보수와 진보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보수적이었을까? 진보적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예수님은 보수를 지지하실까? 아니면 진보를 지지하실까?
보수는 일반적으로 전통과 기존 질서를 존중하고 보존하는 성격을 띤다. 진보는 잘못된 사회의 전통을 개혁하고 새로운 사상과 세상을 추구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르다고 해도 다른 것이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이해했으면 한다. 이런 논의를 할 때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런 과정조차 없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주장하고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나눠보고자 한다.)
나는 좋은 것은 보수하고 나쁜 것은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는 내 편이 보수이면 무조건 다 좋고, 반대편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내 편이 진보이면, 무조건 다 좋고 반대편은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보수의 장점이 있고 진보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보수도 단점이 있고 진보도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잘잘못을 가리는 노력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잘잘못을 가려 내 편일지라도 잘못한 것은 인정해야 하고 상대편이라도 잘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보수와 진보사상을 다 가지고 계셨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보수는 심하다 싶을 만큼 바꾸고 개혁하려 하셨지만, 인간의 가장 중요한 존엄성과 잘못되지 않는 질서는 보수하려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것을 개혁하려는 마음이다. 잘못된 것은 과감히 지적하고 바꿔야 한다. 그러나 잘하는 것은 그대로 보수를 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적인 싸움을 하는 논리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잘못할 수 있다. 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한가지 혹은 몇 가지 잘못을 가지고 그 사람은 못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 문제이다. 그 사람의 인간됨까지 무시하고 무너뜨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잘못은 많지만 좋은 점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가장 중요한 인간이고 한 생명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성,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인간의 행동이 인간의 존재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런데 세상의 정치는 이것이 잘못되었으니, 모두가 잘못이라는 논리로 싸움을 한다. 행동이 존재성 위에 있다. 나는 이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 한국의 정치의 문제라는 것이다.
대신에 잘하는 것은 잘 한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존재가 행위보다 앞서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셨다. 죄인의 친구로 오셨다. 잘못한 죄인, 잘못함이 있어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다. 인간의 존재, 생명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보수하시려는 보수였다. 반대로 예수님은 잘못된 사상을 가진 유대인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사상에 대해서는 정말 호되게 비판하셨다. 새 포도주는 새부대에 넣어야 할 만큼 잘못된 것은 완전히 통째로 다 바꾸어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님 만큼 진보적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잘못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하셨다.
우리도 상대가 잘못한다면 예수님의 관점을 생각해야 한다. 죄인의 편에서 그들을 용서하지만, 약자를 핍박하는 강자에 대해서는 냉혹한 비판을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예수님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연약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기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긍휼을 갖되, 죄에 대해서는 과감히 고치도록 해야 한다. 죄를 미워해야 한다. 죄를 증오해야 한다. 죄의 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죄를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 잘못된 전통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 인간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용서해야 하는 존재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용서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사람은 잘못할 수 있다.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해 피눈물나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 잘못을 떠나 사람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워서는 안 된다. 사람의 존엄성만큼 귀한 것은 없기에 사람을 살려야 한다. 사람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심지어 죄조차도 사람의 존엄성을 해할 수 없다. 복음의 참다운 무게는 용서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