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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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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7일(금) 본문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막 8장)
+ 말씀 설명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이 있었던 후 예수님은 제자들과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다. 제자들은 배에 떡이 하나도 없으므로 인해 걱정하여 예수님께 상황을 보고하였다. 예수님은 이전의 두 번의 기적, 즉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과 떡 일곱 개로 칠천 명을 먹인 기적을 행한 것을 보고서도 떡이 없으므로 인해 걱정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그러면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누룩이란 바리새인과 헤롯의 위선적인 행위와 세속적인 거짓 가르침을 말한다. 이들은 예수님을 책 잡고자 표적을 구했는데, 이는 어떻게든 예수님을 해하려 하는 행위였다.
기적이 아니고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받는다.
+ 묵상과 적용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불안하고 걱정하는 일이 요즈음 있는가?
이런 불안과 걱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님의 능력을 믿으면서 해야 할 적극적인 세상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주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켜가게 하소서.
2. 핀란드 기독교인들이 세속화 시대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떳떳하게 자랑하며, 지역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도록
+ 성경 본문(막 8장 )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 양심
그저께 TV에서 인터뷰 한 내용을 보았다. 인터뷰하신 분은 대학 교수였는데, ‘양심’에 대한 책을 내셨고 인터뷰에서는‘양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교수님은 그래도 이전에는 양심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했는데 요즈음은 양심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양심은 어디다 팔아먹었냐?’‘양심도 없는 사람’등 사람을 공격하는 단어로라도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간에 ‘양심’이 사라진 시대라는 것이다. 이 시대가 되찾아야 할 것은 법이나 사실도 필요하지만, 양심이라고 하였다.
양심은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다. 누구나 양심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양심의 기준이 어디여야 하는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자기 양심은 자기가 안다.’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양심에 대해 평가하거나 기준을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각자의 양심은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한 교수님은 자기 양심을 속이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사회가 양심을 회복하고 양심의 기준으로 산다면 훨씬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교수님의 말을 들으면서 양심이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판단인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제어해주는 것이 양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양심이다. 자신의 양심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고 자신만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알고 계시며 보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을 속일 수 없듯이 하나님을 속일 수 없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이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산다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산다면 어디서나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다. ‘양심’과 ‘하나님 앞에서’를 잠시 묵상해보며, 하늘을 향하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런 세상이 된다면 그 세상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될 것이다. 양심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떳떳하게 산다면 이 세상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