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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8일(토)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8일(토)

후앙리 2025. 3. 8. 11:40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8)

 

+ 말씀 설명

예수님께서 벳세다에서 한 맹인을 만나셨다. 이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고치셨다.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 치유하신다. 첫 번째 치유에서는 이 맹인이 사람을 나무같은 것이 보인다고 하였다. 두 번째 치유에서는 완전하게 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예수님이 참 치유자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거치셨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사람을 고치시고 나서 이 사람에게 마을에 들어가지 말도록 하셨다. 마을에서 벗어나서 치유해 주시고 치료 후에는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순한 몸을 고치는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서이다. 예수님은 영과 육을 고치시고 구원하시는 메시아이신데, 사람들은 한갓 기적을 베푸는 선지자쯤으로 오해하고 있어서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예수님의 온전하신 구원자임을 우리는 믿고 그분을 바르게 이해하고 섬겨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예수님이 영육을 온전히 치유하시는 구세주이심을 믿는 믿음을 갖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선교적 실천

온전하신 예수님의 치유를 받기 위해 변해야 하는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오늘의 기도

1. 주님게 완전한 치유와 변화를 받아 사람을 바르게 보고 주님의 뜻때로 살게 하소서.

2. 유럽에서 오랫동안 정착해 살고 있는 시리아인들에 대한 안전 대책이 강구되고, 망명 신청 이후 불안한 상황에 놓인 시리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되도록

 

+ 성경 본문(8)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 SNS 사용과 자기 홍보

요즘은 자기 홍보의 시대라고 한다. 스스로 홍보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시대이다. IT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유튜버라는 직업도 생겼다. 자신의 생각이나 일상 혹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는 페이스북에 회원 가입은 하였지만, 글을 거의 올리지는 않는다. 책을 출판할 때 홍보하기 위해 몇 번 올린 것이 전부이다. 단체 카톡방에도 나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가능하면 글을 올리지 않는다. SNS에 댓글을 다는 것은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장례나 혹은 몸이 아픈 내용이 있을 때만 한다. 유일하게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는 것은 내가 하는 QT. 내가 SNS를 거의 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SNS를 할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나의 성격 때문이다. 나는 SNS를 하면서 실수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다. 이는 나의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나의 성격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나는 내 생일에 케이크에 초를 켜서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부르는 시간이 아주 힘든 시간이다. 나의 생일은 호적과 원래 생일이 다르다. 그것도 음력으로 생일을 센다. 그러기에 가족 이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내 진짜 생일을 알려주지 않는다. 생일 축하 노래가 내게는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생일에는 아주 신나게 진심으로 축하하며 큰 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내가 부끄러워하는 것은 또 하나 있다. 내가 설교나 강의를 하고 나서 반응이 좋았을 때다. 교회에서 설교하고 내려올 때 교인들이 목사님, 오늘 설교 참 은혜로웠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내게는 괴로운 순간이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설교 후에 아예 교인들을 만나지 않고 피해서 교역자 실로 도망(?)간다. 지난 주일에 교회 집사님 한 분을 만났는데, 집사님 왈, “지난주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많은 위로가 되어 목사님과 악수하려고 찾았는데 못 만났어요하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도망가기를 잘했구나, 생각했다. 나는 선교에 대한 강의를 하러 교회나 선교단체에 많이 다니는 편이다. 강의를 하고 나서 강사 사례금 받는 시간 또한 내게는 괴로운(?) 시간이다. 안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날름 받는 것도 내게는 힘든 일이다.‘감사합니다라고 받을 때 속으로 어찌나 쑥스러운지 모른다. 더욱더 내가 괴로운 시간은 선교에 대한 강의를 하고 나서 강의에 감동을 받았다고 후원 봉투를 주는 순간이다. 내가 삯 군이 아닌데, 선교 강의를 하고서 후원을 받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된다. 나는 선교를 위해, 넓게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돈을 챙기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 아직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위의 내용도 간접적으로 나의 자랑과 홍보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SNS를 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나의 성격상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나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드러내야지 나를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고민이 된다. 요즈음 SNS는 소통의 수단인데, 내가 그것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위축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나의 사역과 생활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채널을 막아놓고 사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결국 나는 혼자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주님과만 친밀하고 주님만 드러내면 된다는 그런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주님은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맺으라고 하셨기에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그런 면에서 어디까지가 정말 나를 드러내지 않고 주님을 드러내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긴다. 이번에도 책을 내면서 책을 SNS에 정말 홍보를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은 책을 홍보하기 위해 1억원의 돈을 사용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내 SNS에 올리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결국 내 자랑이며 주님의 영광을 홀로 가로채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과 사회 속에서 함께 어울려 살라는 주님의 뜻과 배치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 사이에서 정답을 모르는 채 오늘도 나는 다른 사람의 SNS를 눈팅하고 있다. 정답을 모르기에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눈팅만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