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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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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 존재에 근거를 둔 평안 본문
아담(정신지체 장애자로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움직일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케나다의 데이 브레이크 장애인 센터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장애인이다)의 평안은 무엇보다도 존재에 근거를 둔 평안이다. 아담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다른 이에게 철저히 의존하고 있다. 그의 은사는 온전히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아담의 일과를 행하도록 ‘하기’위해, 저녁 식사를 하도록 그를 돕고, 그를 잠자리로 데려가기 위해 집으로 달려가는 매일 저녁, 나는 내가 아담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와 함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 아담이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것은 내가 그와 함게 ‘있는’것이라고 믿는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나에게 매우 큰 기쁨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숨을 쉬고, 먹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 그의 모습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가 자기 입에 숟가락을 갖다 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혹은 누군가 자기 셔츠를 벗겨 주는 일을 더 수월하게 하려고 조금이라도 자기의 왼팔을 들어올리려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다. 나는 그가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이 늘 의아스럽다. 나는 단지 여기에, 나의 친구와 함께 있다. 아담이 내게 가르쳐 주는 진리는 얼마나 단순한가, 하지만 이 얼마나 살아 내기 힘든 것인가. 존재란 행위보다 중요하다.
아담은 우리 가운데 가장 연약하지만, 의심할 바 없이 우리 모두로 하여금 가장 강력한 유대 관계를 이루게 하는 인물이다. 아담 때문에 항상 누군가가 집에 있다. 아담 때문에 그 집에는 조용한 리듬이 있다. 아담 때문에 침묵과 고요의 순간이 있다. 아담 때문에 늘 애정어린 말과 친절과 부드러움이 있다. 아담 때문에 인내와 오래 참음이 있다. 아담 때문에 모두에게 웃음과 울음이 있다. 아담 때문에 늘 서로에 대한 용서와 치유의 공간이 있다. 그렇다. 아담 때문에 우리 가운데 평안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이토록 다양한 성격과 이토록 이상하며 다양한 장애(정신병적인 것이든 아니든)를 가진 사람들이 평안 가운데 함께 살 수 있겠는가?
아담은 실로 자신 주위로 우리를 불러서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이 잡다한 그룹에 가족을 형성해 냈다. 아담은 진정 우리를 화평케 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방법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전 1:27-29). 아담은 바울의 이 말씀을 육화시켰다. 그는 내게 진정한 공동체의 신비를 가르쳐 주었다. (영생에의 길. 헨리 나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