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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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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부활시키시는가? 본문
2001년 부활주일에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세족식도 하였다. 예배 후에 교인들이 싸온 점심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그동안 에콰도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일 년에 한 번 정도도 교인들이 함께 식사할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교회에서 가장 기쁘고 의미 있는 부활주일을 맞아 교인들이 집에서 조금씩 음식을 해 와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메뉴는 간단했다. 교인 한 사람당 옥수수 한 개와 삶은 계란 한 개, 그리고 삶은 감자 몇 개씩이었다. 함께 식사의 교제를 나누면서 교인들이 참 좋아하고 즐거워하였다. 모처럼 나눈 풍성한 점심과 사랑의 교제 시간이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면서 작은 식탁이지만 함께 기쁨을 누렸다.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부활주일의 풍성함 가운데 부활의 의미를 묵상하며 참 소망을 가져 본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신다. 지금 이곳의 인디헤나들의 삶은 경제적인 면에서 죽은 자와 다름없는 삶이다. 일 년에 한 번도 교인들이 점심을 함께 나누기 힘든 열악한 상황이다. 하루에 한 끼 먹기도 힘든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처럼 대우 받고 사회에서 죽은 사람처럼 말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죽은 자와 같다. 하나님이 부활시키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런 죽은 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부활은 실제적인 소망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부활시키심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부활시키신다. 죽음을 앞에 두고 우리 주님은 고통으로 몸부림치셨다. 주님은 십자가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려고 밤을 새면서 기도하셨다. 주님의 고통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다. 지금 이곳의 인디헤나들도 많은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그들의 고통을 정확히 모를 만큼 그들의 삶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무시도 당한다. 힘든 노동을 하지만 보수는 차비나 빵 한개 사 먹기 힘들 만큼 적다. 가족들이 가까운 곳에라도 한번 소풍을 갈 만한 여유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중에 있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셨는데 부활주일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부활시키시는 것을 확신한다. 이들에게 부활의 소망은 이 세상의 고통의 크기를 다 해소하고도 남을 크나큰 기쁨이 될 것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외롭고 소외된 자들을 부활시키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그를 따르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도망갔다. 그가 고쳐주셨던 많은 병자들, 일으켜 세워 주셨던 소외당한 자들, 3년 동안 훈련했던 제자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영하던 무리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주님은 혼자서 십자가를 지셨다. 주님이 얼마나 큰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셨겠는가! 지금 이곳의 인디헤나들의 삶이 소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격을 무시당하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인디헤나들의 외로움과 소외를 위로하시고 그들을 부활시키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을 부활시키신다. 예수님은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오늘날에도 순종하는 자들은 부활의 소망을 경험할 수 있다. 인디헤나들은 이 세상에 소망이 없기 때문에 주님을 더욱 찾고 주님께 순종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순종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순종하는 인디헤나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외아들을 부활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게 섬기는 종을 부활시키셨다. 주님은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수치였다. 죄인인 인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이런 수치를 무릅쓰고 이 땅에 오셨다.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김의 왕으로 오셨다. 주님은 누구보다도 겸손하셨다. 인디헤나들의 삶은 종된 삶, 그 자체다. 그들이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 그들은 나면서부터 종과 같은 신분으로 살아간다. 종된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하나님은 종된 삶을 살고 있는 인디헤나들을 또한 부활시키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이여! 예수님을 부활시키셨던 것처럼 인디헤나들을 다시 살리시고 회복시켜 주소서. 아멘.” 부활주일을 보내면서 하는 간절한 기도이다. (200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