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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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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교회 연합회 목사들의 방문 본문
교회 연합회(AIEP) 목사들이 우리 가정이 다시 에콰도르에 돌아온 것에 대해 환영회를 열어 주었다.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하지 않고 거부하지도 않고 환영하며 반갑게 맞이해 주니, 한국에서 떠나오면서 가졌던 슬픔을 달래는 위로의 시간이 되었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무도 아는 척을 해주지 않았다면 조금은 서운했을 것이다.
이분들과는 지난 첫 텀인 4년 동안 함께 선교 사역을 하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도 아니었고, 나는 단지 작은 일을 했을 뿐이다. 특별하게 눈에 보이는 사역을 한 것도 아니다.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이분들을 위해서 돈으로 일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돈에 있어서는 이분들에게 참으로 인색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돈으로 사역을 하는 것이 이분들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돈 대신에 사랑과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였다. 나는 그저 이분들과 함께 지냈을 뿐이다. 함께 놀고, 먹고, 일했을 뿐이다. 내가 선교사라는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기 전에 그저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이분들도 나를 친구처럼 대해 주셨다.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 준 것 같아 감사하다. 이분들의 환영을 자신들을 더욱 겸손히 섬겨 달라는 표시로 받아들이고 싶다.
오늘 함께 모였을 때 이분들은 내가 없는 동안에 해야 할 숙제, 즉 목사 정기 모임을 계속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안식년을 가기 전에 이분들께 목사 모임을 계속하면서 기도하고 성경 공부하는 것을 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다시 돌아와 보니 모임은 지속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목사님들 자신들이 보기에도 부끄러웠나 보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내 놓는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이미 모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분들이 모이지 못했다면 그것은 내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모임을 나 중심으로 이끌어 왔기에 내가 없을 때는 이분들 스스로 모일 수가 없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선교사는 선교사가 없을 때도 모임이 계속되도록 가르치고 도와야 할 필요가 있는데, 나에게 그것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이분들이 모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내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기들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내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도리어 미안할 뿐이다. 이 기회를 통해 이분들이 스스로 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 본다. 이들과 함께 나의 삶을 나누되, 나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희생으로 하며, 이분들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섬길 것을 다짐해 본다.
오늘 나의 에콰도르 귀환 환영 모임을 하면서도 목사님들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였다. 내가 안식년으로 가기 전에도 말다툼을 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보였는데, 지금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말다툼하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처럼 자신은 잘나고 상대는 못났다는 식으로 말다툼을 하는데 어쩌면 참 단순한 모습이다. 어린아이들처럼 바로 돌아서서 또 잘 지내는 모습도 보인다. 끝까지 독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양보하고 또 좋은 분위기로 바꾸어 간다. 이분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모임에 계속 참석하면서 서로를 믿고 함께 한다. 어쩌면 서로 신뢰하기에 마음에 있는 것을 터놓고 어린아이처럼 친근하게 대하는 듯도 하다. 그 모습이 서로 다투는 것으로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의 모임은 더 좋은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좀 더 서로 이해하고 말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우리 단체의 모임을 생각하면서 좀 더 성숙하게 대처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이분들의 문제는 서로의 관계 문제이다. 스스로는 해결할 수 있는 관계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의 의견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선교사인 내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분들이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여기에 다시 온 것이다. 선교사는 이방인이기에 그들과 함께 동일하게 밀착되어 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들을 평화롭게 하는 중재자의 역할은 오히려 더 잘 감당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주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섬기는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이나 배운 것이 더 많다고 해서 교만해서는 안 된다. 주님처럼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 주님처럼 자신을 내어 주기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들을 섬겨야 한다. 나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분들은 내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연합회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나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이방인이고 주인은 이들이라는 것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이들이 주인이 되도록 선교사인 나는 세워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내가 앞장서서 모든 것을 다하면서 이들이 따르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옆에서 도움을 줄 뿐이고 이들이 직접 주인으로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만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분들은 오늘 우리 집에 오면서 모두들 한 가지씩 선물, 즉 음식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이 나라 경제가 어려워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나를 생각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올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눈 것이다. 어떤 사람은 빵을, 어떤 사람은 치즈를, 어떤 사람은 집에서 재배한 콩과 옥수수를, 그리고 계란을 가져왔다. 이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날 만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처럼 나를 생각해 주고 환영해 주는 것이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내가 섬겨도 부족한데 나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이들이 이 귀한 것들을 주는 것이 또 다른 부담이 된다. 하나님이 더 많이 갚아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한다. 앞으로 더 많이 섬겨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왜 이렇게 많이 가져 왔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의 풍습이라고 대답한다. 이런 좋은 풍습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가운데 선교사의 기쁨과 만족이 바로 이런 것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하루였다. (200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