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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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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영성/영성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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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앙리 2021. 6. 3. 15:06

긍휼이란 아파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함께 아파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외아들을 사별한 나인 성의 과부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다. 그 여인의 아픔이 그분의 몸속에 그대로 느껴졌다. 고통이 어찌나 영혼 깊이 느껴졌던지 그 긍휼의 마음으로 그분은 아들을 불러 다시 살리셔서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7:11-15).

긍휼이란 인간 조건에 온전히 몰입한다는 뜻이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도 비슷한 고통을 느꼈다. 벨기에의 황량한 탄광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해서 살 때도 그랬고, 긍휼에 찬 붓놀림으로 네덜란드 남부의 배고픈 농부들의 초상을 그릴 때도 그랬다. 고흐는 깊숙이 숨어 있는 인간의 슬픔에 도달해서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 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우리를 두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고통이 깊어져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그것이 바로 위로가 된다. 고흐에게 기쁨과 슬픔은 신비롭게 맞물려 있어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두움, 삶의 희열과 죽음의 고통, 그것을 양쪽 모두 표현하는게 고흐의 위로이자 과제였다. 그의 예술 작업은 사람들의 마음과 삶에 도달하려는 부단한 몸부림이었다.

고흐가 스케치와 데생과 회화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는게 있다. 고난의 연대가 낳는 건 동정이 아니라 위로라는 것이다. “위로(comfort)”란 어원적으로 새롭게 함께 하는 힘이라는 뜻이다. 고난의 연대를 이루려면 진정한 공유가 가능한 정도로까지 고통이 깊어져야 할 수도 있다.

서로의 연약함을 품는 사람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들의 새 출발을 경험할 것이다. 함께 아파하는 긍휼은 인간의 커다란 모험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모험에 나서서 인간의 무서운 외로움에 과감히 함께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삶이 모습을 드러낸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어디든지 가난과 외로움과 모든 고난이 있는 곳으로 보냄받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을 용기도 주신다. 고통의 자리에 들어가면 예수님의 기쁨을 얻는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은 긍휼에서 태동한다.

우리는 긍휼의 사역으로 부름받았다. 이것은 큰 소망이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다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공동체로 살아가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 죽어가고 있는 병실의 문도 두려움 없이 두드릴 수 있다. 겉만 번드르르할 뿐 속으로는 절실히 사역이 필요한 사람과도 우리는 두려움 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롭다.

나도 그것을 늘 경험한다. 물론 내가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친구들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없을 나도 잘 안다. 오히려 사역으로 나를 섬겨주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나와 함께 있어 주는 사람들이다. 나의 빈곤이 느껴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발견한다.  (삶의 영성, 헨리 나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