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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남을 배려하는 사람 본문

선교와 영성/선교는 삶이다

남을 배려하는 사람

후앙리 2020. 8. 17. 11:54

오래 전에 한국에서 살 때, 한 가수가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이 가수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는 힘든 과정을 통과하였다. 뇌종양은 청각을 잃을 수도 있고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려울 수도 있는 병이라고 했다. 이 병을 앓는 절반의 사람들은 영원히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가수는 감사하게도 거의 완쾌되었다. 사회자는 병을 이기고 완쾌한 가수에게 치료하는 과정 가운데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에 관하여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가수는 자신이 병을 낫게 된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이유는 많은 분들이 이 병으로 지금도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데 자신만 나았다고 자랑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특권을 받아 회복했지만 지금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 치료에 대해서 들을 경우 그 사람들이 더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어서 치료 과정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 가수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을 자랑하기에 앞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나라면 별 생각 없이 내가 병에서 나은 과정을 설명하면서 자랑을 했을 텐데 그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은 그 마음이 나는 고마웠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간증을 하지만 그 간증으로 오히려 고통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간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탤런트 최불암씨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최불암씨의 어머니는 어려운 시절에 서울 한 복판에서 국밥 장사를 하셨다. 어머니가 국밥 장사를 한 곳은 그때 당시에 예술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그 시절에 예술인들은 많이 가난했다. 가난했지만 자존심은 대단한 예술인들이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 예술인들에게 밥을 외상으로 팔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상 장부에는 밥을 먹었던 예술인들의 이름이 모두 가명으로 쓰여 있었다. 혹시나 예술인들이 자존심이 상할까 봐 돈 없는 그들을 이해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적지 않은 것이다.“키다리 아저씨”, “눈이 큰 아저씨등의 이름으로 외상값을 적어놓았다. 외상장부에는 그 사람들을 배려한 아름다운 마음이 들어 있었다.

이지선 자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자매는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어 거의 죽을 뻔 했다가 다시 살아난 자매이다. 수십 번의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온 몸은 흉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매이다. 죽을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살 소망이 없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교통사고 이후에 자매는 사람들에 대한 기피증이 생겼다. 사람들을 피해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주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하였다. 치료차 일본에 갔을 때였다. 어느 날 밤에 자신을 간호하던 엄마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갈 수 없는 시간이었다. 특별한 다른 방법이 없어 자신이 가까운 약국에 약을 사러 가야했다. 자매는 그때까지 혼자서 밖에 나간 적이 거의 없었다. 상황이 다급해서 두려움을 안고 혼자 약국에 가야만 했다. 그녀는 약국 주인이 자기얼굴을 보고 놀라거나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 가운데 약국을 찾았다. 그런데 그 약국 주인은 이 자매의 화상 입은 얼굴을 보고 놀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보통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했다. 사람들이 이상할 거라는 생각으로 사람을 기피하면서 살아왔는데 세상은 자기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 자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 뒤로 이 자매는 자신감을 얻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지금은 교회들을 다니면서 간증을 한다. 한 일본 약국의 주인의 배려가 자매를 다시 살렸을 뿐 아니라 이 자매가 많은 사역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단 한 번의 자연스러운 배려가 놀라운 기적을 이룬 것이다.

 우리 주님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분이셨다. 요한복음 1장에 니고데모가 회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나사렛에서 선지자가 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율법주의자였다. 전통에 매여 사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무시하고 거부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배척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나아 왔을 때,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노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척한 사람을 보고 오히려 칭찬 하신 것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당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다라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의 전도방법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칭찬해주는 방법이었다. 니고데모의 부정적인 모습을 본 것이 아니라 좋은 점을 보신 것이다. 주님은 그를 따뜻한 모습으로 받아 주셨다. 이것이 바로 배려다. 배려가 한 사람을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사랑은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을 세워주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칭찬해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의 아픔을 싸매어 주는 것이다.

어떤 부인이 상담을 요구했다. 남편에게 늘 좋은 말을 하는데 남편은 들어주지 않았다. 부인은 자신이 좋은 말을 하는데 남편은 잔소리로 여겨 듣지 않기에 자기의 좋은 말을 잔소리로 듣는 남편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상담가를 찾아왔다. 상담가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은 듣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듣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더 중심에 있다고 했다. 듣는 사람이 잔소리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잔소리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잔소리가 될 수도 있고 좋은 말이 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말을 듣는 사람이 기준이다.

선교는 바로 선교지 현지인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세워주고 이해하는 것이 선교다. 주님은 최초의 선교사로서 인간의 입장을 생각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세상을 구원하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셨지만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과 함께 살면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을 선택하셨다. 인간의 입장에서 구원 하셨다.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신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신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신 것이다.

선교사의 삶과 사역의 방법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때 참된 사역의 열매가 맺어진다. 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말하는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리스도인인가?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어떤 면에서 배려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