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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미국의 대 참사 본문

선교와 영성/선교는 삶이다

미국의 대 참사

후앙리 2020. 8. 7. 14:13

 

평소에는 아침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 2001911일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우연히 TV를 켰다. TV를 켜자마자 CNN 뉴스 채널에서 비행기 한 대가 세계 무역 센터를 들이받는 화면이 나왔다. 연기가 나면서 무역 센터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런 광경을 보게 되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TV 앞에서 떠날 수가 없어 2시간 정도 TV를 시청하였다. TV를 끄고 해야 할 일을 하려고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충격적인 뉴스를 보고 하루를 그냥 보내고, 그 다음날에야 정상적인 일들을 하는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해 동료 선교사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아마 이 사건은 나에게처럼 이 세상 누구에게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911 사태를 보면서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를 다시 느꼈다.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스스로 영원히 살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살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천년만년 살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인생은 인간 자신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진리인데, 나조차도 잊고 살아온 것 같다.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은 매 순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함을 다짐하게 한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참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과 자부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말로만이 아닌 위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존재로 순간마다 연약함을 깨닫고 돌아보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엄청난 테러 사건을 보면서 사람의 생명에 대한 귀중성을 잃어버린 세상의 악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그처럼 무시하고 짓밟을 수 있는가? 자신이 죽어서라도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함께 죽어도 된다는 그런 가치관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이처럼 세상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참된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인 너무나 귀중한 생명의 존엄성이 땅에 떨어져 버린 세상이다. 주님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했는데, 이데올로기, , 권력, , 종교, 이런 것들이 사람의 생명의 위엄을 뭉개 버리고 있다. 이 세상이 점점 더 하나님의 세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이 사건 앞에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은 오직 복음으로만 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새로운 형상을 회복할 수 있고,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된 인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새롭고도 창조적인 변화는 오직 복음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러면서 복음의 능력과 힘을 믿고 복음으로 살아갈 뿐 아니라 복음의 사명을 바로 감당할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이런 참사의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의 교만인가? 이슬람의 잘못된 사상인가? 이 원인은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죄에서 기인된 것이다. 존귀한 생명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비참한 고통과 극한의 아픔은 바로 죄에서 나온 것이다. 특정한 그 누구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가 겸손히 자신 속에 있는 죄악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 죄악이 이런 커다란 상처와 아픔을 가져 온 것처럼 평소에도 죄는 모든 인생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죄악은 지금도 인간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 죄의 결과의 심각성은 이번 미국의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거짓과 도둑질과 싸움과 고통의 비참함으로도 나타난다. 고독과 방황과 악의와 공격과 파괴와 허무함으로 죄가 지배하고 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런 것들이 죄의 실체를 보게 한다. 그러므로 죄의 무서움을 알고 내가 가지고 있는 죄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미국도 이 기회에 복수보다는, 죄로 인한 교만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며 약한 나라들을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이 문제가 죄의 문제임을 알고 자신의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4,5)”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 순간에 이 모든 악으로 인해 미국이 회개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 각자도 똑같이 우리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하고 그것을 회개해야 한다.

이 사건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의 필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사람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전도가 지금 필요하다. 복음을 모르는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회복해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을 모르는 자들을 주님을 모르는 상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명을 위해 지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한다면 사람의 생명을 그처럼 가볍게 여기는 세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도를 다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책임을 감당치 못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 공격에서 피해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아니라, 전도를 통해서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이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세상이 공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야 할 필요를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을 그대로 방치해 둔다면 공의가 무너질 것이다. 테러를 정당화시키는 도덕 기준을 가진 사람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생명을 무시한 대가를 그들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대가를 치르도록 할 수 있는가? 우리 자신도 공의롭지 못하기에 공의롭게 대처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방법이 있다면 인내와 지혜와 사랑이다. 우리 주님은 불의한 이 세상의 공의를 위해 칼로 싸우지 않으셨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공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다. 자기희생이 바로 주님의 사랑이었고 주님의 방법이었다. 이 사랑은 자기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주님의 희생에는 사랑이 내재되어 있었다. 우리가 공의를 이루기 위해서도 동일한 방법이 필요하다. 당장은 잘 안되고 더딜지라도 내가 있는 곳에서 나 자신을 희생하고 그 희생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공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 사건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진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신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테러한 자들을 도와 그들에게 테러하도록 허락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테러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죽음의 결과는 인간 스스로의 죄의 결과이다. 이번 희생자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죄를 지어서 희생을 당했다는 말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죽음과 아픔은 인간의 죄악의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이 그 악한 사건의 책임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악을 조장하거나, 테러를 일으키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하나님을 이번 사건의 책임자로 돌려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고,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죄 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그분의 크신 뜻을 다시 한 번 찾아야 한다. 사건이 일어나고 난 주일에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마다 자리가 꽉 찼다는 것이다. 이 기회를 통해서 한 생명이라도 주님께 다시 돌아온다면, 천하를 잃더라도 한 생명이 돌아왔기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희생자들의 가족들도 하나님이 계시기에 위로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유가족들이 하나님을 더 찬양하는 모습을 본다. 희생자의 가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분께 겸손히 나아가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200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