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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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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에콰도르 복음주의 연합회(AIEP) 성탄 행사 본문
AIEP 교회들은 성탄절에 특별한 교회 행사가 없다. 교인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 한 끼를 하거나 아이들에게 사탕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주는 정도이다. 이런 보습을 보면서 이번 성탄절에는 모든 교회가 함께 모여서 AIEP 목사님들께 성탄 음악 발표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연극이나 성도들의 간증 순서도 넣고 서로 식사를 나누면서 성탄의 의미를 새기면서 축하를 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행사를 하자고 하였다. 이런 행사를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목사님들께 충분히 설명하였다. 내가 이런 안건을 낼 때 목사님들은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동의를 하였다. 성탄절 때 특별한 다른 행사가 없기에 문제없이 이틀 동안 모일 수 있다고 했다. 이 행사를 목사님들과 함께 한 달 정도 준비해 왔다. 행사를 두 주 정도 남겨놓고 그날 식사 준비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의견을 나누는 가운데 식사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 준비의 어려움 때문에 이틀하기로 했던 콘서트를 하루만 하기로 계획을 변경하되 24일 날만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25일은 바쁘고 가족들이 만나야 한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한 달 전에 계획할 때는 전혀 무리가 없다고 하더니 막상 성탄절이 가까워지자 하루만 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의견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물론 이 행사를 계획한 것은 나였지만 목사님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을 존중하면서 준비해 온 행사였다. 결국은 24일 밤에 하는 행사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목사님들은 행사 날짜가 다가오자 이런 저런 이유로 할 수 없다고 하여 그동안 준비하였던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많이 아쉬웠다. 정말 좋은 기회였고 함께 준비했는데 실행을 못 하게 되자 실망감이 들었다. 잠시 상황을 돌아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리해 보았다.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는 가운데 문제는 내게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성탄절에 가족끼리 모이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대로 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선교사가 성탄절에 축하 콘서트를 해야 한다고 하니 마음이 거북스러웠던 것이다. 그래도 선교사가 하려고 하니 직접적으로 못 한다고 말하지는 못 하였다. 이들은 그 사람을 앞에 대고 반대하는 것에 대해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수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선교사가 하자고 아니 그저 선교사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계속해서 선교사가 밀어 붙이니 이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성탄절에는 가족들과 만나야 한다고 하면서 행사를 취소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선교사인 나는 이들의 문화와 생각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저 선교사의 고국 문화가 성탄절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니 이곳에서도 드리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강하게 인도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충분히 이들의 문화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반대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잘못을 한 것이다. 나는 이번 일을 경험하면서 선교사 마음에 좋다고 하는 것들이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가 너무 주도적으로 일을 끌고 가기보다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이 더 중요한 것임을 또한 깨달았다. 이들의 보이지 않는 문화 속의 내면의 세계관을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도 경험하였다. 문제는 현지인들이 아니라 선교사임을 다시 한 번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다. (200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