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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장애인들의 가르침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장애인들의 가르침

후앙리 2009. 9. 2. 11:54

오늘 장애인들이 모인 소망교회(물론 장애인만은 아니다. 비장애인들이 더 많다.)에서 ‘믿음의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장애인들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그들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로 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헨리 나우엔은 장애인을 우리 인생의 ‘선생님’이라고 표현 했다. 그들을 선생님으로 이해할 때 그들로 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갖는 고통으로 비장애인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그들의 고통은 그들 자신들만의 죄악의 결과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결과로 장애의 고통을 가지고 산다. 그들의 아픔은 너무나 크다. 그들의 그 아픔이 바로 우리 자신의 죄의 결과이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들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장애인 자신들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의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아울러 그 고통의 결과가 우리 죄라면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져야 한다. 그들만이 갖는 아픔을 우리가 대신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의 죄와 인류의 죄의 심각성을 깨달으면서 그들을 돕는 것이 곧 그들의 아픔을 짊어지는 것이요, 나의 죄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죄를 두려워하면서 죄 가운데 살지 않아야 한다. 우리 죄의 짐을 대신 지고 단순한 고통의 차원이 아닌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장애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 더 나아가 그들의 몫까지 우리가 대신해서 이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두려움을 가지고 우리가 가진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그 건강을 가지고 더 가치 있는 일을 해 나가야 한다. 우리의 책임감이 크다는 것을 장애인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들이 고통 받는 만큼의 양의 책임감이 우리에게 있다. 그들은 육체의 고통으로서 그들의 책임감을 다 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사명을 부끄럽지 않게 하고 우리 생명을 하나님을 위해 아낌없이 드려야 한다.

장애인들은 회복과 소망을 가르쳐 준다. 그들은 장차 회복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고통을 당한 사람은 그 고통의 회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성경은 시험을 인해서 기뻐하라고 했다 (벧전1:6,7. 약1:2,3). 시험을 당한 자는 장차 회복될 것이기에 그 소망을 인해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고통은 아주 빠른 시일에 반드시 회복 된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약속이다. 시험과 고통이 없는 자의 인생은 의미가 없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이 있었기에 부활의 영광을 맛보실 수 있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고통 없는 영광은 없다. 장애인들의 고통은 의미가 있으며, 그 고통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장애인들은 생명이 다른 어떤 것 보다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 장애인들은 불편한 몸, 건강치 못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가장 중요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가치는 건강함이나 편리함 그 이상이다. 그 생명은 비장애인과 똑 같은 생명이다. 이는 그들이 가진 생명 그 자체로서 그들의 존재 의미는 확인 되었다.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생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 모두에게 환영받을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생명으로 인해 모두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의 존재 그자체로 그들은 소중하며, 모두에게 환영받으며 하나님으로 부터 무한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가진 재물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진 건강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식과 권력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생명 자체를 사랑하시며,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장애인들을 비장애인보다도 더 사랑하시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병든 자와 가난한자들의 친구요, 그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그들이 가진 장애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된다. 장애인들은 이미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 있기에 육체적인 고통 이면에 이미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때로 뇌성마비나 전혀 의식을 갖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말이 없이 지낸다. 그들은 100% 다른 사람을 의존하며 산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수 없다. 다른 사람을 의존하며 조용히 묵묵히 지내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비장애인들도 침묵하게 된다. 아무 말이 필요 없는 그들 앞에 비장애인들은 얼마나 많은 말을 하며 사는가를 깨닫게 된다. 이 세상은 얼마나 시끄러운 세상인가!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라도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침묵을 통해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하나님을 묵상해야 한다. 침묵은 생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들며, 진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침묵은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준다. 침묵 속에서 장애인들은 연약함이 복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바쁘고 지치게 만드는 이 세상의 삶에서 장애인들은 침묵을 통해 참다운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게 만족하며 살라고 가르친다. 비장애인들이 가진 것들은 장애인과 비교해서 더 넘침에도 불구하고 불평으로 산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에게 그 정도 가졌으면 충분하다고 그들의 몸으로 가르친다. 그들도 만족하며 사는데 건강한 사람들이 왜 불평하며 사는가를 경고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대할 때마다 만족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배운다. 그들에게 귀중한 진리를 배우면서도 그들을 대하는 순간이 지나면 불평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장애인들을 돌보고 도와주는 비장애인들도 불평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장애인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배우지도 못하고 사는 것이 어쩌면 내 모습이 아닌가?

장애인들은 하나님을 의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그들은 전적으로 그들의 몸과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산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식이 있든지 없던지 간에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신뢰하며 의존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이런 존재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사는 존재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자신 만만하며 산다.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다. 어린 아이들은 의존한다. 어른들에게 자신을 몽땅 다 맡긴다. 그것처럼 하나님께 의존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장애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의존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준다.

장애인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 장애인들은 이미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장애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존재들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자가 축복을 받은 자 라고 하셨다. 자신의 생명을 잃은 자가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된다고 하셨다. 장애인들에게 장애는 이미 그들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장애인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도 살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살고 있다.

장애인들의 장애는 하늘나라에서 분명히 회복 될 것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많은 아픔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위로가 그들에게 넘쳐 날 것을 믿는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2001년/ 2기 사역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