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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장애인들의 가르침 본문

선교와 영성/선교는 삶이다

장애인들의 가르침

후앙리 2020. 7. 15. 11:56

장애인들이 모이는 소망 교회(물론 장애인만은 아니다. 비장애인들이 더 많다.)에서 믿음의 시험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설교를 하면서 그들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장애인들과 함께하면서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헨리 나우엔은 장애인을 우리 인생의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장애인들은 우리 모든 인생의 선생님이다. 선생님이신 장애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갖은 고통을 통해 비장애인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그들의 고통은 그들 자신들만의 죄악의 결과가 아니다.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전 인류의 죄의 결과로 장애의 고통을 받은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갖는 아픔과 고통도 죄의 결과다. 물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더 많은 죄를 지어서 장애의 고통을 당한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인간의 고통은 전 인류의 죄의 결과이기에, 장애인들의 고통을 보면서 우리 모든 인간이 함께 가지고 있는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연약함과 죄를 돌아보게 된다. 죄가 전 인류가 함께 지은 것이라면 장애인들이 지고 있는 고통의 짐도 전 인류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장애인들이 갖는 아픔은 장애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어려운 고통을 당하는 것에는 비장애인들도 자신들의 죄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고 그 고통을 함께 지라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죄를 두려워하면서 죄 가운데 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장애인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장애인들의 몫까지 이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하나님을 섬기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비장애인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여 그 건강을 가지고 장애인들의 고통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 장애인들은 육체의 고통으로 비장애인들이 경성하여 살도록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에 비장애인들은 깨어 경성하여 장애인들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우리에게 회복과 소망을 가르쳐 준다. 그들은 장차 회복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고통을 당한 사람은 그 고통의 회복을 반드시 맛보게 될 것이다. 성경은 시험으로 인해 기뻐하라고 했다(벧전 1:6,7. 1:2,3). 시험을 당한 자는 장차 회복될 것이기에 그 소망으로 인해 기뻐하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고통은 아주 빠른 시일에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약속이다. 어쩌면 시험과 고통이 없는 자의 인생은 의미가 없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 죽음의 고통이 있었기에 부활의 영광을 맛보실 수 있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고통 없는 영광은 없다. 그래서 장애인들의 고통은 의미가 있으며, 그 고통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장애인들은 생명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장애인들은 불편한 몸, 건강치 못한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도 가장 중요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 생명 그 자체의 가치는 건강함이나 편리함, 그 이상이다. 그 생명은 비장애인과 똑같은 생명이다. 장애인들이 가진 생명 그 자체로 그들의 존재 의미는 확인된다. 그들의 생명은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생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 모두에게 환영 받을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생명으로 인해 모두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의 존재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가진 재물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가진 건강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가진 지식과 권력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 그 자체를 사랑하신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들 더 사랑하시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의 친구요, 그들을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그들이 가진 장애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된다. 장애인들은 이미 사랑 받는 존재가 되어 있기에 육체적인 고통 이면에 이미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게 침묵을 가르친다. 뇌성마비나 전혀 의식을 갖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이 없이 묵묵히 지내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비장애인들도 침묵하게 된다. 아무 말이 필요 없는 그들 앞에 비장애인들은 얼마나 많은 말을 하며 사는가를 반성해 본다. 이 세상은 얼마나 시끄러운가!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라도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침묵을 통해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침묵을 통해 하나님을 묵상해야 한다. 침묵은 생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침묵은 진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침묵은 인간의 내면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준다. 장애인들은 침묵 속에서 연약함이 복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바쁘고 지치게 만드는 이 세상의 삶에서 장애인들은 침묵을 통해 참다운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에게 만족하며 살라고 가르친다. 비장애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들이 장애인과 비교해서 더 넘침에도 불구하고 불평으로 산다. 심지어 장애인들을 돌보고 도와주는 건강한 사람들도 장애인 앞에서 불평하며 사는 현실이다. 장애인들은 이런 비장애인들에게 그 정도 가졌으면 충분하다고 그들의 몸으로 가르치고 있다. 장애인들도 만족하며 사는데 비장애인들은 왜 불평하며 사느냐고 그들의 고통을 통해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대할 때마다 만족하며 살아야 된다는 결심을 하지만, 그들에게 귀중한 진리를 배우면서도 순간마다 불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장애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배우지 못하는 비장애인인 내가 바로 하나님이 보시는 장애인이다.

장애인들은 하나님을 의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그들은 전적으로 그들의 몸과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산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이다(특히 중증 장애인: 내가 사역하는 소망 재단에는 중증 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의식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의존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것이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존재이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사는 존재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처럼 자신만만해 하며 산다.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과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18:3)”고 하셨다. 어린아이들은 누군가를 의존한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 이처럼 하나님께 의존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장애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준다.

장애인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가르쳐 준다. 장애인들은 이미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장애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존재들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 있는 자(5:3)라고 하셨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10:31)이라고 하셨다. 장애인들에게 장애는 이미 그들에게 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어쩌면 인간은 모두가 장애인들이다. 하나님 앞에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그 은혜 때문에 살고 오늘도 그 은혜를 누리며 사는 존재이다. (200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