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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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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희래의 요청 본문
희래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고 떼를 부려 처음에는 힘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처럼 유치원 버스로 통학하면 45분 정도 걸리지만 내가 차로 직접 데려다 줄 때는 7~8분이면 충분하다. 앞으로 2개월 정도 이 유치원에 다닐 것이고 그 뒤로는 다른 유치원으로 옮길 예정이다. 그래서 이 유치원에 다닐 시간도 얼만 남지 않았고 마침 나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통학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데려다 주고 있다. 아침에 유치원에 데려가서 내려 줄 때마다 희래가 하는 말이 있다. “아빠! 오후에 꼭 데리러 와야 해. 그리고 빨리 데리러 와야 해.”라는 말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 말을 하면서 유치원으로 들어간다. 그것도 하루에 한 번이 아니라 다섯 번 이상 이 말을 한다. 나도 늘 똑같은 대답을 한다. “그래 염려하지 마라. 어제 아빠가 데리러 왔던 것처럼 오늘도 꼭 일찍 데리러 오마.”라고 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 희래의 똑같은 요청을 들으면서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희래가 왜 매일같이 이렇게 할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데리러 가는데도 왜 습관처럼 잊지 않고 이런 말을 꾝 해야만 할까? 나를 못 믿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때로 똑같은 말을 듣는 것이 아빠인 나로서는 귀찮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이 아빠를 의지하는 딸의 마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딸은 아빠를 의지하고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존재이다. 아빠를 의심해서라기보다는 아빠를 의지하는 마음 때문에 매일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딸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은 아빠이다. 딸은 아빠를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다. 어린 딸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를 의지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이 아이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 인간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쩌면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연약한 존재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돌봐 주시고 안전을 지켜 달라고 기도한다. 그것도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희래를 향한 내 마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희래가 요청할 때마다 “왜 아빠를 믿지 못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걱정하지 마라.”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실 것이다. “왜 나를 믿지 못하고 늘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시다.
희래에게 바라는 것은 아빠를 믿고 이제는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고, “유치원에 잘 다녀올게요.”라고 하면서 씩씩하게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안전은 염려하지 말아라. 모든 것을 내게 맡기고 너는 네 일에 충실하기만 하라”라고 하시는 것 같다.
지금은 희래가 아빠인 나를 의지하지만 커 가면서 독립된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희래가 성장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내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 안전을 지켜 달라고 요청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독립된 존재로 산다는 것은 육신의 안전은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산다는 의미이다. 불안은 하나님께 내려놓고 맡겨진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안전을 지켜 달라는 요청 대신에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네게 더하시리라.(마6:33)”라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200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