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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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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다른 사람 입장 생각하기

후앙리 2009. 8. 31. 09:53

한국의 선교 본부에서 일하는 친구 선교사로로부터 한 통의 이 메일을 받았다. 본부 사역자들과의 어려운 관계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이메일을 보낸 친구는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면서 상대의 잘못을 들추어내었다. 이 친구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에게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권면을 하고 싶다. 상대도 똑같이 힘들 것이기에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한계는 상대의 약점은 잘 알지만 자신의 약점은 모르거나 회피한다는 있다. 상대의 입장보다는 내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가 내 자신의 약점 때문에 괴로워할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야 한다. 옛 말에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상대의 아픔을 먼저 헤아려 보아야 한다. 내 자신이 아픈 것처럼 상대도 나 때문에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 본 말씀이다. 이메일을 보낸 친구를 생각하면서 적용해 본다. 창세기 42장 21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 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요셉의 형들이 총리 요셉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자책하는 장면이다. 이전에 아우 요셉의 애걸함을 듣지 않았기에 자기들의 애걸함을 애굽 총리가 듣지 않는다고 두려워한다. 요셉이 전에 겪은 것과 같은 벌을 자신들이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형들은 자신들이 아우 요셉의 간구함을 거절했던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요셉과 같은 상황에 처해 보니 그제야 요셉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에 대해 반성을 한다.

이런 형들의 모습은 상대를 지금 이해하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나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당하고 있을 것을 생각지 못한다면 요셉의 형들처럼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요셉의 형들처럼 나중 보다는 지금 내가 고통을 받는 것을 생각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을 성찰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래야 자신도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

요셉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지금 요셉은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형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극적인 만남을 위해서 자신을 잠시 숨기고 형들을 외면하는 척 한다. 요셉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의 고통도 그는 직접 겪어보았고 지금 당하는 형들의 아픔도 이해 할 수 있다. 그 형들은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지만 그는 잘 알고 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다 아신다. 하나님은 요셉이 형들의 고통을 아는 것처럼 우리의 고통도 아신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고통을 당해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경험하셨고 현재 우리의 고통의 크기가 얼마인지를 아신다.

요셉은 무엇보다도 형들에게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요셉은 보복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긍휼의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말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아신다. 르후벤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가 죽을지라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요셉의 긍휼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도 우리가 장담하고 자신만만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우리의 의와 노력이 하나님의 긍휼을 앞설 수 없다.

내가 상처를 받았을 때, 그래서 많이 아플 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헤아리기 보다는 상대의 아픔을 헤아려 본다. 물론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더 좋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아픔을 이겨나가야 한다. 나도 내가 아플 때 다른 사람의 아픔까지 생각해주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2000년/2기 사역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