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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희래를 훈계하면서 본문
희래가 유치원에 다닌 지 2개월이 되어 간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아침에 유치원에 갈 때 짜증을 부리고,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서 매일 울면서 간다. 다행히도 어제 아침에 처음으로 울지 않고 웃으면서 유치원에 갔다. 오늘 아침에도 웃으면서 유치원에 가는 것을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정반대로 일어날 때부터 울기 시작했다. 일어나라고 깨우니까 유치원에 가기 싫은지 잠이 온다고 했다. 어젯밤에 모임이 있어서 집에 늦게 돌아온 탓에 잠을 적게 자서 짜증이 날 만도 하다. 그래서 유치원 버스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고 있었다. 결국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려 유치원 버스에 태우지 못했다. 버스를 그냥 보내고 집으로 들어와 희래에게 유치원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달래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울기만 하고 가지 않겠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야단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매를 들어 손바닥을 몇 대 때렸다. 희래는 손바닥을 맞고서도 고집을 부렸다. 20분 동안을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잠을 좀 더 자고 유치원에 가는 것으로 하고 1시간 정도 늦게 내가 유치원에 직접 데려다 주었다.
늦게라도 희래를 유치원에 가도록 한 것은 한번 받아 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할 것 같아서였다. 이제 유치원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데 지금 고집을 꺾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았다. 희래에게 매를 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드는 일이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 나를 연단하시거나 채찍질하실 때의 하나님의 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하나님의 자녀인 내가 고통을 당할 때를 묵상하였다. 그 하나님의 마음은 내가 희래를 훈계할 때 갖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희래를 훈계하면서 내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희래의 마음도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희래는 엄마, 아빠가 야단을 칠 때 야단맞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다. 매번 야단맞을 때는 울지만, 돌아서면 바로 얼굴이 밝아지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잘 논다. 아빠인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아 “희래야, 아빠가 너를 때렸는데도 아빠가 안 미워? ”하고 묻는다. 희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전과 다름없이 명랑하다.
내가 고난을 당할 때, 나의 삶의 연단의 때에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나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의심한다.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내 고통의 크기보다 더 크시지는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평소에는 나를 향하여 그렇게 아파하지 않으시겠지만, 내가 고난을 당할 때면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더 아파하실 것이다. 희래가 아플 때, 내 마음이 희래보다 더 아픈 것처럼 하나님도 그러실 것 같다. 희래가 나를 원망한다면 내 마음이 아픈 것처럼, 내가 고통 중에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더 아프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고난을 당하거든 참고, 장차 올 영광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희래의 명랑한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나에 대해서도 만족하실 것이다.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로 인해서 하나님 스스로 아파하시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에게 고난 중에 참으라고 하신 것이다.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더 아파하지 않기 위해서인 것은 아닐까? 이제는 아픔이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내 마음이 희래로 인해서 그토록 아팠던 것을 알았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희래를 채찍질할 때 희래가 아프다고 하였다. 울면서 아빠인 내게 그만 때리라고 하였다. 그 순간에 멈추면 희래의 나쁜 습관이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아 필요한 만큼 나는 매를 든다.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희래는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매를 맞으면서라도 유치원에 가야 하는 것이 희래가 앞으로 세상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과정이다. 나는 그 순간에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순간을 떠올렸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예수님을 외면하셨다. 만약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예수님의 소원을 들어 주셨다면 인류의 구원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아파도 인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외면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예수님을 외면하시고 그 고통보다 더 큰 분량의 부활의 영광을 허락하셨다. 내가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시는 시간임을 기억하리라. 그 훈련 뒤에는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2000.11.17)